🎯 스토아주의자로 일주일 살아보기 · 6일 차

공동체와 자연

나는 어디까지 이어져 있고, 그 선을 내가 늘릴 수 있습니까

📖 9개 절📊 표 4🎬 영상·오디오 2
① 이론
② 미디어
③ 실천·필사
④ 과제
⑤ 느낌점

오늘의 핵심 질문

나는 어디까지 이어져 있습니까. 그리고 그 선을 내가 늘릴 수 있습니까.

 

1

「자연에 따라 살아라」가 무슨 뜻입니까

 

📌 이 절의 핵심

· 「자연에 따라 살아라」

· 스토아에게 사람의 본성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입니다.

·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일

스토아의 표어가 하나 있습니다. 「자연에 따라 살아라」입니다.

이 말을 오늘날 들으면 대개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시골에 가서 사는 것, 또는 무리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것.

둘 다 아닙니다.

스토아가 말한 「자연」은 두 가지를 함께 가리킵니다.

무엇인가 따른다는 것은
세계의 자연 세계 전체가 이성적 질서로 짜여 있다 그 짜임을 알고 거기에 맞춰 사는 것
사람의 자연 사람은 이성을 지녔고 무리를 이루어 사는 존재다 이성을 쓰고 무리 안에서 제 몫을 하는 것

둘째 줄이 오늘의 자리입니다. 스토아에게 사람의 본성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입니다. 그러니 「자연에 따라 산다」는 것은 산으로 가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어제 디오게네스가 사회를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스토아가 견유학파와 갈린 자리가 이것입니다. 오늘 내용이 그 갈림의 다른 쪽입니다.

2

히에로클레스의 동심원

 

📌 이 절의 핵심

· 히에로클레스가 한 말은 그다음에 있습니다.

· 끌어당겨서 가운데 쪽으로 옮기는 것

· 관계는 부르는 말을 따라 움직입니다.

기원후 2세기의 스토아 철학자 히에로클레스가 그림 하나를 남겼습니다. 원문은 사라졌고, 『스토바이오스 선집』에 인용된 단편으로 전합니다.

그는 사람을 여러 겹의 원 한가운데에 놓았습니다.

원 누가 있는가 가운데에서
1 나 (몸과 마음) 0칸
2 부모·형제·배우자·자식 1칸
3 친척 2칸
4 이웃·같은 마을 사람 3칸
5 같은 나라 사람 4칸
6 모든 사람 5칸

여기까지는 상식입니다. 누구나 가까운 사람을 더 아낍니다.

히에로클레스가 한 말은 그다음에 있습니다.

그는 이 원들을 바깥에서 안으로 당기라고 했습니다. 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끌어당겨서 가운데 쪽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구체적입니다. 부르는 말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사촌을 형제라 부르고, 나이 든 친척을 아버지·어머니라 부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고대 지중해 사회에서 통용되던 호칭법이기도 합니다.

이 처방이 오늘 실천의 뼈대입니다. 관계는 부르는 말을 따라 움직입니다.

3

부르는 말이 관계를 바꾼다는 것

 

📌 이 절의 핵심

· 부르는 말은 거리를 정합니다.

· 부르는 말을 바꾸라

· 손에 잡히는 것부터 건드립니다.

이것이 그럴듯한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미 겪고 있는 일입니다.

같은 반 학생을 뭐라고 부릅니까.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과 「걔」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급식실 아주머니를 뭐라고 부릅니까. 편의점 야간 근무자를 뭐라고 부릅니까.

부르는 말은 거리를 정합니다. 이름을 부르면 한 칸 안으로 들어오고, 「그 사람」이라고 부르면 한 칸 밖으로 나갑니다.

히에로클레스는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가짐을 바꾸라고 하지 않고 부르는 말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마음은 잡히지 않지만 말은 잡힙니다.

첫날부터 이어지는 방식이 여기서도 보입니다. 스토아는 손에 잡히는 것부터 건드립니다.

4

세계시민 — 어제의 그 말

 

📌 이 절의 핵심

· 「나는 세계의 시민이다.」

·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 같은 말인데 방향이 반대입니다.

5일 차에 디오게네스의 말을 옮겨 적었습니다. 「나는 세계의 시민이다.」

그 말이 오늘 스토아로 넘어옵니다. 다만 뜻이 달라집니다.

디오게네스(견유) 스토아
「세계시민」의 뜻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속한다
그러므로 나라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나라의 일에 참여하되 더 큰 원을 잊지 않는다

같은 말인데 방향이 반대입니다. 디오게네스는 그 말로 소속을 끊었고, 스토아는 그 말로 소속을 넓혔습니다.

아우렐리우스가 이 생각을 짧게 적어 두었습니다.

“

"이성이 우리에게 공통이라면 법도 공통이다.
법이 공통이라면 우리는 같은 시민이다.
그렇다면 세계는 하나의 나라와 같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IV.4

로마 황제가 적은 글이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그는 국경을 지키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었고, 그러면서 세계가 하나의 나라라고 적었습니다.

5

잘린 가지

 

아우렐리우스에게 그림 하나가 더 있습니다.

“

"가지에서 잘려 나온 가지는 나무 전체에서도 잘려 나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온 사람은 공동체 전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그런데 가지는 남이 자르지만, 사람은 이웃을 미워하고 등을 돌림으로써 **스스로를 자른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공동체 전체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XI.8 취지

마지막 두 줄이 중요합니다.

첫째, 자르는 사람이 나입니다. 누가 나를 밀어낸 것이 아니라 내가 등을 돌린 것입니다.

둘째, 자른 사람은 그 사실을 모릅니다. 가지는 잘린 줄 알지만 사람은 모릅니다. 한 사람과 사이가 틀어졌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우렐리우스는 같은 대목에서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사람은 다시 붙을 수 있습니다. 잘린 가지는 다시 붙지 않지만 사람은 붙습니다. 그것이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이라고 그는 적었습니다.

잠깐, 생각 실험 하나 — 원을 당길 때 생기는 일

원을 당기라는 말이 좋게만 들립니다. 그런데 해 보면 어렵습니다.

모두를 똑같이 아낄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스토아도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히에로클레스는 원을 없애라고 하지 않고 당기라고 했습니다. 원은 그대로 있고 위치만 옮깁니다.

그러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한 칸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이웃 칸으로 오는 것. 이웃이 친척 칸으로 오는 것. 그 한 칸이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 나에게 일부 일이 됩니다.

여기서 물음 하나. 원을 당기면 짐이 늘어납니다. 신경 쓸 일이 많아지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런데도 당길 이유가 있습니까.

스토아의 답은 이렇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무리를 이루어 사는 존재이므로, 원이 좁을수록 자기 자연과 어긋납니다. 그리고 자기 자연과 어긋나면 사람은 편치 않습니다.

이 답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불만을 오늘 board에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논쟁적인 자리입니다.

6

환경 — 여기서는 정확히 말하겠습니다

 

📌 이 절의 핵심

· 스토아 철학자들은 환경 문제를 말한 적이 없습니다.

· 원전이 말한 것과 우리가 늘린 것을 구분해서 말합니다.

· 원전에 없는 주장을 원전의 이름으로 말하는 경우

동심원을 지구까지 늘려도 됩니다. 먼저 그것부터 말해 두겠습니다. 오늘날 스토아를 환경 윤리로 읽는 연구자가 여럿 있고, 근거 없는 확장이 아닙니다.

다만 늘리는 방법에 규칙이 있습니다. 그 규칙을 위해 한 가지를 정확히 해야 합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환경 문제를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문제가 없던 시대입니다. 그들의 「자연」은 생태계가 아니라 세계의 이성적 질서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히에로클레스의 마지막 원은 모든 사람이지 「전 지구」가 아닙니다. 동물과 식물과 땅까지 원 안에 넣는 것은 현대의 확장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지켜야 합니까. 두 가지입니다.

  1. 원전이 말한 것과 우리가 늘린 것을 구분해서 말합니다. 「스토아가 환경을 지키라고 했다」는 틀리고, 「스토아의 동심원을 오늘 늘려 보면 여기까지 온다」는 맞습니다.
  2. 늘린 이유를 스스로 댈 수 있어야 합니다. 원전에 없는 것을 붙일 때는 붙이는 사람이 근거를 대야 합니다.

이레 동안 세 번째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1일 차에 출처 없는 명언을 보았고, 4일 차에 잘못 붙은 인용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원전에 없는 주장을 원전의 이름으로 말하는 경우입니다.

셋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좋은 말이면 출처가 틀려도 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스토아를 일주일 배운 사람이 그러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7

물지게를 지던 철학자

 

📌 이 절의 핵심

· 낮에는 제논에게 배우고 밤에는 물을 길어 정원에 주는 일을 하며

· 그가 제논의 뒤를 이어 32년간 학파를 이끌었습니다.

· 에픽테토스가 『엥케이리디온』 마지막 장에 옮겨 적었습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은 클레안테스입니다. 스토아의 두 번째 수장입니다.

그는 원래 권투 선수였다고 전해집니다. 아테네에 왔을 때 가진 돈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제논에게 배우고 밤에는 물을 길어 정원에 주는 일을 하며 학비를 벌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물 긷는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동료들이 그를 굼뜨다고 놀렸는데,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자기는 제논의 말을 담는 그릇이 낡아서 새기는 데 오래 걸릴 뿐, 한번 새기면 오래 간다고.

그가 제논의 뒤를 이어 32년간 학파를 이끌었습니다. 재능이 앞선 사람들이 아니라 그가 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것 중 온전히 전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우스 찬가』입니다. 세계의 이성적 질서를 노래한 시인데, 스토아 문헌 중 드물게 원문 형태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의 한 대목을 에픽테토스가 『엥케이리디온』 마지막 장에 옮겨 적었습니다. 오늘 필사할 구절이 그것입니다.

8

오늘의 영상 (2편)

 

이 페이지에는 오늘 이론과 곧바로 맞물리는 두 편만 둡니다. 나머지 미디어는 섹션 2 「6일차 미디어 모음」에 모아 두었습니다.

영상 보는 이유
지식채널 「너와 내가 만날 때 1부」 오늘 2·3절의 자리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어떻게 정해지는지를 다룹니다
지식채널 「저를 위해 지워주세요」 오늘 6절의 자리입니다. 환경 이야기인데, 원전에 없는 것을 어떻게 이어 붙이는지를 보는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보는 방법. 한 가지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이 영상은 원을 몇 칸 당기고 있습니까.

 
🎬

🎬 영상

지식채널 「너와 내가 만날 때 1부」

오늘 2·3절의 자리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어떻게 정해지는지를 다룹니다

지식채널 「저를 위해 지워주세요」

오늘 6절의 자리입니다. 원전에 없는 것을 어떻게 이어 붙이는지 보는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섹션 2 「6일차 미디어 모음」입니다.

오늘 자료를 한자리에 모아 두었습니다.

✅ 오늘의 정리

1

「자연에 따라 살아라」가 무슨 뜻입니까 — 스토아에게 사람의 본성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입니다.

2

히에로클레스의 동심원 — 히에로클레스가 한 말은 그다음에 있습니다.

3

부르는 말이 관계를 바꾼다는 것 — 손에 잡히는 것부터 건드립니다.

4

세계시민 — 어제의 그 말 — 같은 말인데 방향이 반대입니다.

5

환경 — 여기서는 정확히 말하겠습니다 — 원전이 말한 것과 우리가 늘린 것을 구분해서 말합니다.

6

물지게를 지던 철학자 — 낮에는 제논에게 배우고 밤에는 물을 길어 정원에 주는 일을 하며

마지막 수정됨: 금요일, 9 8월 2024, 10:57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