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차 이론 — 나의 정체성과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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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핵심 질문
나는 무엇으로 되어 있습니까. 그리고 그중 어디까지가 내가 고른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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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네 글자로 나를 말할 때 |
📌 이 절의 핵심
· 나를 설명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
· 하나, 그 네 글자가 나의 어느 부분입니까.
· 둘, 그 네 글자가 나를 설명하는 데서 끝납니까, 아니면 나를 정하기 시작합니까.
요즘 자기소개에 네 글자가 따라붙습니다. "저 INFP예요." 그 한마디로 상당한 정보가 전달됩니다. 상대도 대체로 알아듣습니다.
이 방식이 편한 이유가 있습니다. 나를 설명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네 글자는 그 어려움을 한 번에 건너뛰게 해 줍니다.
그런데 두 가지가 걸립니다.
하나, 그 네 글자가 나의 어느 부분입니까. 성격입니까, 취향입니까, 지금 상태입니까. 작년에 검사했을 때와 올해 결과가 다른 사람이 많습니다.
둘, 그 네 글자가 나를 설명하는 데서 끝납니까, 아니면 나를 정하기 시작합니까. "나는 I라서 먼저 말 안 걸어"라고 말하는 순간, 설명이 규칙이 됩니다.
오늘 이야기는 이 두 물음을 다룹니다. 스토아는 사람을 한 겹이 아니라 네 겹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그중 어디까지가 고른 것인지를 갈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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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겹의 나 |
📌 이 절의 핵심
· 키케로가 『의무론』에서 옮겨 적은 것
· 넷째 겹이 오늘의 중심입니다.
· 같은 기질과 같은 자리를 받고도 사람은 다른 것이 됩니다.
스토아 철학자 파나이티오스가 정리한 개념이 있습니다. 사람이 지닌 네 개의 얼굴입니다.
이 개념이 우리에게 전해진 통로가 흥미롭습니다. 파나이티오스의 원저는 사라졌고, 키케로가 『의무론』에서 옮겨 적은 것이 남았습니다. 어제 확인한 대로 키케로는 스토아가 아니었는데, 그가 옮긴 덕분에 이 개념이 남았습니다.
네 겹은 이렇습니다.
| 겹 | 무엇인가 | 고른 것인가 |
|---|---|---|
| 첫째 — 사람이라는 것 | 누구나 지닌 것. 생각할 줄 알고 옳고 그름을 따질 줄 안다 | 아니다 |
| 둘째 — 타고난 것 | 나만의 기질과 재능. 빠른지 느린지, 무엇에 끌리는지 | 아니다 |
| 셋째 — 놓인 자리 | 시대·가정·학교·나이가 준 역할. 지금은 학생이고 누구의 자식이다 | 대개 아니다 |
| 넷째 — 고른 것 | 그 조건 위에서 내가 무엇이 되기로 하는지 | 그렇다 |
넷째 겹이 오늘의 중심입니다.
앞의 셋은 대체로 주어진 것입니다. 첫날의 말로 하면 「밖」입니다. 그런데 넷째는 다릅니다. 같은 기질과 같은 자리를 받고도 사람은 다른 것이 됩니다.
파나이티오스가 이 넷을 나눈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설명하는 말 중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어디인지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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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은 바꿀 수 있는 것입니까 |
📌 이 절의 핵심
· 둘째 겹(타고난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 같은 기질이 여러 방향으로 자랍니다.
· 「타고난 것을 어느 쪽으로 쓸지 정하라」
여기서 흔한 물음이 나옵니다. 성격은 타고나는 것 아닙니까.
스토아는 둘째 겹(타고난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조심스럽고 어떤 사람은 겁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주목한 것은 다른 자리입니다. 같은 기질이 여러 방향으로 자랍니다.
| 타고난 것 | 이렇게 자라면 | 저렇게 자라면 |
|---|---|---|
| 조심스러움 |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사람 | 준비를 꼼꼼히 하는 사람 |
| 급함 | 자주 후회하는 사람 | 먼저 움직이는 사람 |
| 예민함 | 쉽게 상처받는 사람 | 남의 기색을 잘 읽는 사람 |
| 무심함 | 남을 안 챙기는 사람 | 흔들리지 않는 사람 |
왼쪽 칸은 같습니다. 오른쪽 두 칸이 갈립니다. 무엇이 갈랐습니까. 넷째 겹입니다.
그래서 스토아는 「성격을 바꿔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타고난 것을 어느 쪽으로 쓸지 정하라」고 말합니다. 이쪽이 훨씬 할 만합니다.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 있는 것의 방향을 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실천 ①이 이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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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속에 살았던 사람 |
📌 이 절의 핵심
· 둘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이고 싶다."
· 셋째, 그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녔습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은 시노페의 디오게네스입니다. 그런데 먼저 바로잡을 것이 있습니다. 어제 키케로와 같은 상황입니다.
디오게네스는 스토아 철학자가 아닙니다.
이 프로젝트의 기존 자료는 그를 「스토아주의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견유학파(犬儒學派), 그리스어로 키니코스에 속한 사람입니다. 키니코스는 「개 같은」이라는 뜻입니다. 욕이었는데 그들이 그 이름을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이야기 몇 개를 옮기겠습니다. 전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6권에 실려 있습니다.
첫째, 그는 통에서 살았습니다. 정확히는 큰 항아리였습니다. 집도 재산도 갖지 않았습니다. 가진 것은 옷 한 벌과 지팡이와 자루, 그리고 물을 마실 컵 하나였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손으로 물을 떠 마시는 것을 보고 컵마저 버렸다고 전해집니다.
둘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항아리 앞에 서서 물었습니다. 무엇을 원하느냐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겠다고.
디오게네스가 답했습니다. "햇빛을 가리지 말고 좀 비켜 주시오."
알렉산드로스가 돌아서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이고 싶다."
셋째, 그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찾느냐고 물으면 "사람을 찾고 있소"라고 답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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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는 견유학파에서 무엇을 가져왔는가 |
📌 이 절의 핵심
· 한국에서 스토아를 「금욕주의」로 옮겨 온 것이 부정확한 이유
·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무언가를 줄 수 없습니다.
· 지금 여러분에게서 누군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왜 스토아 과정에 견유학파가 나옵니까. 첫날 2절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스토아를 세운 제논은 난파를 겪고 아테네에 왔고, 서점 주인이 가리킨 사람을 따라갔습니다. 그 사람이 크라테스였고, 크라테스는 디오게네스의 제자였습니다.
즉 스토아의 창시자가 견유학파에게서 배웠습니다. 계보로 보면 소크라테스 → 안티스테네스 → 디오게네스 → 크라테스 → 제논입니다. 견유학파가 스토아의 직계 조상인 셈입니다.
그러면 두 학파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릅니까.
| 견유학파 | 스토아 | |
|---|---|---|
| 좋은 것은 | 덕뿐이다 | 덕뿐이다 (같다) |
| 재산·명예는 | 버려야 할 것 | 「선호되는 것」.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 |
| 사회는 | 관습이 사람을 망친다. 거부한다 | 사람은 사회적 존재다. 참여한다 |
| 사는 방식 | 통에서 산다 | 황제도 되고 정치가도 된다 |
첫 줄이 같습니다. 그것이 스토아가 견유학파에게서 가져온 것입니다. 밖의 것으로 사람을 재지 않는다는 태도.
나머지가 다릅니다. 견유학파는 밖의 것을 버렸고, 스토아는 밖의 것을 가지되 거기에 매이지 않는 쪽을 택했습니다.
첫날 7절의 오해 ①이 여기서 풀립니다. 한국에서 스토아를 「금욕주의」로 옮겨 온 것이 부정확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금욕은 견유학파 쪽입니다. 스토아는 세네카처럼 부자로 살아도 되고 아우렐리우스처럼 황제로 살아도 됩니다.
잠깐, 생각 실험 하나 — 아무것도 없어도 되는 사람
디오게네스에게 알렉산드로스가 무엇이든 주겠다고 했을 때, 그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욕심이 없어서라고 답하기 쉽습니다. 절반만 맞습니다.
다른 각도로 보겠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었습니까.
돈을 준다고 해 봅시다. 그는 이미 돈 없이 사는 법을 익혔습니다. 집을 준다고 해 봅시다. 항아리로 충분합니다. 지위를 준다고 해 봅시다. 그는 지위로 사람을 재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무언가를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줄 수 없다면 빼앗을 수도 없습니다.
여기서 디오게네스의 자유가 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 앞에서 비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사람이 자기에게서 가져갈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스토아는 아니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그 답이 이 학파의 성격을 정합니다.
다만 물음 하나는 남겨 두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에게서 누군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적, 인정, 관계, 평판.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많을수록 그만큼 잡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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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과 나 사이의 틈 |
📌 이 절의 핵심
· 각 역할에서 제 몫을 하라
· 역할과 나 사이에 틈이 있어야 합니다.
· 여기서 오늘의 도구가 나옵니다.
네 겹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셋째 겹인 놓인 자리를 다시 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여러 역할을 지납니다. 학생, 자식, 친구, 동생 또는 형, 부원, 아르바이트생.
스토아는 이 역할들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각 역할에서 제 몫을 하라고 말했습니다. 에픽테토스는 사람을 배우에 비유했습니다. 배역은 내가 정하지 않지만 연기는 내가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역할과 나 사이에 틈이 있어야 합니다.
틈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역할이 무너질 때 내가 함께 무너집니다. 성적이 곧 나인 사람은 성적이 떨어지면 자기가 없어집니다. 「우리 반에서 웃긴 애」가 곧 나인 사람은 슬픈 날에도 웃겨야 합니다.
틈이 있으면 다릅니다. 역할을 하되 그것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그만둘 수도 있고 다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오늘의 도구가 나옵니다. 나를 설명하는 문장을 네 겹으로 나눠 보면, 그중 몇 개가 셋째 겹(역할)이고 몇 개가 넷째 겹(고른 것)인지가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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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든 사람들 |
📌 이 절의 핵심
· 「누구에게서 나는 무엇을 배웠다.」
· 넷째 겹(고른 것)을 우리는 혼자 고르지 않았습니다.
· 그중 어떤 것은 이제 내가 고른 것이구나.
마지막으로 2일 차의 목록을 다시 꺼내겠습니다.
둘째 날에 여러분은 세 줄을 적었습니다. 「누구에게서 나는 무엇을 배웠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 1권에서 한 형식입니다.
오늘 그 목록을 늘립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넷째 겹(고른 것)을 우리는 혼자 고르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좋게 여길지, 어떻게 행동할지를 우리는 누군가에게서 배웠습니다. 대개 배웠다는 것도 모르고 배웠습니다.
목록을 만들어 보면 그것이 보입니다. 그리고 두 가지가 함께 드러납니다.
- 나는 이런 것들로 만들어졌구나.
- 그중 어떤 것은 이제 내가 고른 것이구나.
두 번째가 오늘의 도착점입니다. 물려받은 것이 검토를 거쳐 내 것이 되는 자리. 파나이티오스의 넷째 겹이 그 자리입니다.
아우렐리우스가 1권을 그렇게 쓴 이유도 같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었는데, 자기 책의 첫 권을 자기가 남에게서 받은 것의 목록으로 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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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상 (2편) |
이 페이지에는 오늘 이론과 곧바로 맞물리는 두 편만 둡니다. 나머지 미디어는 섹션 2 「5일차 미디어 모음」에 모아 두었습니다.
| 영상 | 보는 이유 |
|---|---|
| 지식채널 「개처럼 살았던 철학자」(디오게네스) | 오늘 4·5절의 인물입니다. 제목의 「개처럼」이 견유학파(키니코스)의 어원입니다. 스토아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시기 바랍니다 |
| 지식채널 「나는 누구인가 1부」(페르소나) | 「페르소나」는 원래 배우의 가면을 뜻하는 말이고, 오늘 2절의 네 겹이 그 말에서 나왔습니다 |
보는 방법. 한 가지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은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지켰습니까.
🎬 영상
지식채널 「개처럼 살았던 철학자」 — 디오게네스
오늘 4·5절의 인물입니다. 제목의 「개처럼」이 견유학파(키니코스)의 어원입니다
지식채널 「나는 누구인가 1부」 — 페르소나
「페르소나」는 배우의 가면을 뜻하는 말이고, 오늘 2절의 네 겹이 그 말에서 나왔습니다
다음은 섹션 2 「5일차 미디어 모음」입니다.
오늘 자료를 한자리에 모아 두었습니다.
✅ 오늘의 정리
MBTI 네 글자로 나를 말할 때 — 둘, 그 네 글자가 나를 설명하는 데서 끝납니까, 아니면 나를 정하기 시작합니까.
네 겹의 나 — 같은 기질과 같은 자리를 받고도 사람은 다른 것이 됩니다.
성격은 바꿀 수 있는 것입니까 — 둘째 겹(타고난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통 속에 살았던 사람 —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이고 싶다."
스토아는 견유학파에서 무엇을 가져왔는가 —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무언가를 줄 수 없습니다.
역할과 나 사이의 틈 — 역할과 나 사이에 틈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만든 사람들 — 넷째 겹(고른 것)을 우리는 혼자 고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