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tion3-나는피카소다

 
 

교1-101 인문학이란 · 섹션 3 · 영상 들여다보기 ①

〈나는 피카소다〉
그림 한 점을 철학책처럼

 

5분짜리 영상 〈나는 피카소다〉를 한 권의 철학책처럼 읽으며, 관점과 공동체를 묻습니다.

게르니카

그림이 무기가 될 때

입체파

한 사람을 여러 시점에서

두 개의 눈

원근법과 진경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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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5분짜리 영상이 철학책이 되려면

 

비결은 '왜'를 멈추지 않는 데 있습니다. 장면마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이 말은 무슨 뜻일까"를 물으면 5분짜리 영상이 며칠을 곱씹을 텍스트가 됩니다.

1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영상을 본 찬종의 첫 감상입니다.

2

"그 결과값이 그림인 것 같아요."

예술가가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 그 결과값이 그림이라고 정리한 문수의 말입니다.

좋은 텍스트란 길이가 긴 글이 아니라 우리를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두 감상 속에 이 섹션의 씨앗이 있습니다 — 관점, 그리고 예술과 사회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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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한 줄

예술가는 정치적 인물이다

 

“

예술가는 그 자체로 정치적 인물이다.

영상의 자막 — 피카소의 1945년 인터뷰에서 온 말

출처1945년 3월 프랑스 주간지 『레 레트르 프랑세즈』, 시몬 테리와의 인터뷰
원래의 말화가는 눈만 달린 얼간이가 아니라 "동시에 정치적 존재(un être politique)"
뜻가슴을 찢는 사건에도, 불타는 사건에도, 기쁜 사건에도 깨어 있으며 온몸으로 응답하는 존재

🤔 생각해 볼 질문

붓을 든 사람이 정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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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게르니카

장이 서던 월요일 오후의 폭격

 

1937년 4월 26일, 스페인 내전 중에 나치 독일의 콘도르 군단과 이탈리아 공군이 프랑코 반란군을 도우려고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를 폭격했습니다. 무방비 민간인들 위로 폭탄이 쏟아졌습니다.

1

주제를 버리다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 걸 그림을 의뢰받아 놓았던 피카소는, 준비하던 주제를 버리고 이 학살을 그렸습니다.

크기가로 7.8미터, 세로 3.5미터에 이르는 벽 크기의 캔버스 유화
색흑백뿐 — 신문 사진처럼 차갑다
화면비명을 지르는 말, 죽은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어머니, 부러진 칼을 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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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게르니카

총 없이 그린 고발

 
1

그림이 무기가 되다

이 그림에는 총이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연설보다 강력하게 전쟁의 야만을 고발했습니다. 화가는 붓 한 자루로 폭격기와 맞섰습니다.

2

왜 흑백이었을까

화려한 색이었다면 학살이 어딘가 예쁜 그림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색을 걷어 내자 보는 사람은 아름다움에 취할 틈 없이 곧장 고통과 마주칩니다.

독일군 장교와 피카소가 주고받았다는 유명한 일화는 목격자도 1차 기록도 확인되지 않아, 미술사에서는 뒷날 만들어져 굳은 이야기로 봅니다.

비명과 일그러진 형상은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학살 그 자체의 얼굴입니다. 색을 버린 선택조차 하나의 발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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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게르니카

붓을 든 사람에게 중립은 없다

 

화가가 무엇을 그릴지 고르는 순간, 그는 이미 세상의 어느 편에 설지를 고르고 있습니다. 꽃을 그릴 수도 있었던 손이 학살을 그리기로 한 것 — 그 선택 자체가 정치입니다.

🔑 모두 선택이다

1

침묵도 선택이다

2

외면도 선택이다

3

고발도 선택이다

4

무엇을 보여 주지 않기로 했는지도 입장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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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게르니카 · 이어서

붓을 든 사람에게 중립은 없다

 
1

화가만의 일이 아니다

어떤 소식을 전하고 묻어 둘지 고르는 기자도, 무엇을 찍어 올릴지 고르는 우리도 매 순간 작은 선택으로 세상의 어느 편에 서고 있습니다.

🤔 생각해 볼 질문

무엇을 찍어 올리고 무엇을 묻어 둘지 고르는 나의 선택도 '정치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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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피카소의 생각은 2천 년도 더 된 한 문장과 이어져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1권(1253a)에서 사람을 폴리스적 동물(zōon politikon)이라고 했습니다.

zoon동물·생명체
politikon폴리스(polis), 곧 도시 공동체에 속한다
합친 뜻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생명체
1

정치인이 아니다

사람은 본성상 혼자서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고,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 어울려야 비로소 사람다워진다는 뜻입니다.

2

무인도의 사람

생존할 수는 있어도 언어, 우정, 사랑, 약속, 정의 같은 사람의 무늬를 펼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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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아리스토텔레스

짐승도 신도 아니기에

 
1

상대가 있어야 성립한다

말은 들어 줄 누군가가 있어야 말이 됩니다. 약속도, 사랑도, 미움도, 정의도 모두 '상대'가 있어야 성립합니다.

2

짐승이거나 신

공동체를 떠나 혼자서도 충분한 존재는 짐승이거나 신뿐입니다. 사람은 짐승도 신도 아니기에, 함께 살아야 비로소 사람이 됩니다.

3

피카소도 폴리스의 사람

화가가 자기 시대의 전쟁으로부터 단절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인문학의 셋째 층이 '인간관계와 공동체'인 근거가 여기 있습니다.

사람은 진공 속에 떠 있는 점이 아니라, 관계의 그물 위에 놓인 매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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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입체파

2차원 평면에 3차원을 담다

 

피카소는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1907~1908년 무렵 입체파(큐비즘)를 열었습니다. 한마디로 2차원 평면에 3차원을 담으려는 시도입니다.

1

화가의 숙제

종이는 가로와 세로만 있는 2차원, 세상은 높이까지 있는 3차원. 입체인 세상을 어떻게 납작한 종이에 담을 것인가.

2

우리가 사람을 보는 방식

옆모습, 뒷모습, 웃을 때와 화낼 때의 얼굴을 봅니다. 여러 각도의 모습이 합쳐져 '그 친구'라는 하나의 상이 만들어집니다.

3

3차원 전체를 스캐닝

현준이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3차원 전체를 스캐닝해야 합니다. 왼쪽 옆모습, 정면, 오른쪽 옆모습을 따로 본 다음 한 평면 위에 겹쳐서 그리는 것 — 그것이 입체파의 발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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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입체파

못 그린 것이 아니다

 

코는 옆을 향하는데 두 눈은 정면을 보는 얼굴. 처음 본 사람들은 "애가 그린 것 같다"며 화를 냈다고 합니다.

1

실력이 아니라 꿈의 문제

드로잉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이전 화가들이 보여 주지 못한 세상에 대한 관심, 실제 세계를 있는 그대로 구현하려는 꿈의 문제입니다.

2

사실적인 그림의 정체

우리가 사실적이라 믿어 온 그림은 알고 보면 '한 순간 한 자리에서 본 한 조각'에 불과합니다.

입체파는 더 많은 조각을 한 화면에 담아 더 온전한 사실에 다가가려 했습니다. 낯설어 보이는 그림이 사실은 더 정직한 그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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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입체파

타자를 다면적으로 본다는 것

 

한 사람을 여러 시점에서 겹쳐 보는 것은 타자를 다면적으로 보는 것과 정확히 같은 동작입니다. 이 단원의 가장 중요한 다리입니다.

1

한 시점의 함정

"쟤는 원래 저런 애야"라는 단정은 정면 한 장만 그려 놓고 그 사람의 전부라고 우기는 것과 같습니다.

2

한 화폭에 겹치기

다정한 면과 까칠한 면, 강한 면과 무너지는 면. 사람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여러 면을 한 화폭에 겹쳐 그려 보려는 노력입니다.

3

미워하게 될 때

대개 그 사람의 가장 못난 한 면만 크게 확대해 전부인 양 보고 있을 때입니다. 입체파의 눈은 그 옆에 다른 장면들을 나란히 놓아 보라고 권합니다.

🤔 생각해 볼 질문

나는 누군가를 정면 한 장면만 보고 다 안다고 여기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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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원근법

보는 사람의 관점이 곧 정답

 
브루넬레스키1410년대, 피렌체 세례당을 그린 판에 구멍을 뚫고 거울에 비춰 그림과 건물이 겹쳐 보이게 한 실험
알베르티1435년 라틴어로 쓴 『회화에 관하여(De pictura)』로 이론화 — 우리말로 흔히 『회화론』
원리한 지점에 눈을 고정하고,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
1

숨은 전제

그림은 놀랍도록 사실적이 됩니다. 그러나 '보는 사람의 관점이 곧 정답'이라는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나는 세상의 주인입니다.

2

자연 정복적 태도

언덕 위에 건물을 지을 때 언덕을 평탄하게 깎아 냅니다. 사람이 세상의 설계자라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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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진경산수화

금강산이 주인, 사람은 손님

 

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에는 원근법이 없습니다. 산 아래, 산 중턱,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모습을 한 화폭에 함께 담습니다. 입체파와 닮은 데가 있습니다.

1

뿌리는 정반대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산입니다. 사람은 자연을 정복하는 설계자가 아니라 거대한 자연의 일부로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존재입니다.

2

유기체적 태도

언덕 위에 정자를 지을 때 언덕을 깎지 않고 기둥의 높낮이를 조절해 자연의 곡선에 건물을 맞춥니다.

서양의 눈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
동양의 눈나는 세상의 한 부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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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두 개의 눈

틀린 그림법, 옳은 그림법은 없다

 
원근법진경산수화
강점한 시점의 세계를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재현, 근대 과학의 눈을 기름여러 시점을 품어 세계를 더 너그럽게 담음
약점내 관점이 정답이라는 전제한 장면을 정밀하게 재현하는 데는 약함
태도정복깃듦

두 그림법은 각기 다른 진실을 보여 주는 서로 다른 도구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 눈만 정답으로 여기며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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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두 개의 눈

친구와 의견이 갈렸을 때

 
1

원근법의 눈

"내가 옳고 쟤가 틀렸다." 내 시점이 정답이고, 상대는 내 시야 안에 배치되는 대상이 됩니다.

2

진경산수화의 눈

"쟤는 쟤 자리에서 세상을 보고 있구나." 상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풍경이고 나는 그 앞에 선 손님입니다.

같은 산도 아래에서 보면 우뚝하고 위에서 보면 펼쳐집니다. 상대의 시점도 하나의 진실로 인정하는 눈이 다툼을 대화로 바꿉니다.

🤔 생각해 볼 질문

나는 친구와 의견이 갈릴 때 어느 쪽 눈으로 바라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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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관점

다시,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 한마디에 응축된 이 섹션

1

입체파 — 한 사물에 여러 관점이 있다

2

원근법과 진경산수화 — 세상을 보는 관점 자체가 문명마다 다를 수 있다

3

〈게르니카〉 — 어떤 관점을 선택하느냐가 곧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낸다

1

삶이라는 그림

문수의 말처럼 예술가가 사회를 보는 결과값이 그림이라면, 우리 각자의 삶도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매일 한 점씩 찍혀 나가는 그림입니다.

어떤 시점으로, 무엇을 그릴 것인지 — 그것은 오롯이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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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명대사

"나는 피카소다"라는 선언

 

보통 화가는 자기를 지우고 대상을 충실히 그리려 합니다. 피카소는 반대로, 내가 그것을 어떻게 보고 느꼈는지가 곧 그림이라고 말합니다. 그림의 진짜 주인공은 '그것을 본 나'입니다.

독선"내가 본 것이 옳다"고 우긴다
예술가의 용기"내가 본 것은 하나의 진실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끝까지 책임진다"
1

〈게르니카〉의 선언

나는 이 학살을 이렇게 보았고, 이 그림에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남이 보라는 대로만 보는 사람은 "나는 ○○○다"의 빈칸을 채우기 어렵습니다. 자기 시선에 책임지는 사람만이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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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우리들의 일상

단톡방의 "ㅇㅇ" 한 줄

 

친구가 단체 대화방에서 짧게 "ㅇㅇ"이라고만 답했습니다. 그 한 줄만 보면 "쟤 나한테 화났나?" 하고 단정하기 쉽습니다.

1

입체파의 눈으로 겹쳐 보기

평소 말수가 적은 면, 그날 시험을 망쳐 기운 없던 면, 사실은 나를 좋아하는 면. 여러 시점을 겹치면 한 줄의 뜻이 전혀 달라집니다.

2

단정의 무서움

'쟤는 차가운 애'라고 정하고 나면, 따뜻한 행동은 안 보이고 차가운 행동만 자꾸 눈에 띕니다. 한 시점이 다른 시점들을 가려 버립니다.

오해의 대부분은 한 시점의 함정에서 나옵니다. "내가 지금 이 사람의 한 면만 확대해 보고 있는 건 아닐까?" — 피카소가 건네는 일상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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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들여다보기 정리

일곱 개의 매듭

 
게르니카그림이 시대에 맞서는 무기가 된다
정치적 동물사람은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다
입체파여러 시점에서 겹쳐 보는 것이 사람을 제대로 보는 길이다
원근법과 진경산수화세상을 보는 두 태도 — 정복과 깃듦
관점어떤 관점을 고르느냐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낸다
나는 피카소다자기 시선에 책임지는 사람만이 "나는 나다"라고 말한다
단톡방입체파는 매일의 오해를 푸는 태도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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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정리

그림 한 점을 덮으며

 

✅ 오늘의 정리

1

〈게르니카〉처럼 무엇을 그릴지 고르는 선택 자체가 세상에 대한 태도다

2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만 온전한 사람이 되는 '정치적 동물'이다

3

입체파의 눈은 한 사람을 여러 시점에서 겹쳐 보라고 권한다

4

원근법과 진경산수화는 정복과 깃듦이라는 세상을 보는 두 태도를 대비시킨다

5

자기 시선에 책임지는 사람만이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다

🤔 생각해 볼 질문

입체파의 발상이 친구나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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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1-101 인문학이란 · SECTION 3 · 영화 들여다보기 ①

섹션 3

영상 들여다보기 ① 〈나는 피카소다〉를 철학 텍스트로 읽기

5분짜리 영상 〈나는 피카소다〉를 한 권의 철학책처럼 읽으며, 관점과 공동체를 묻습니다.

📖 전문 10장⏱ 읽기 약 18분
 
01

CHAPTER 01

💭 들어가며 — 그림 한 점을 철학책처럼

📌 이 장의 핵심

▸ 좋은 텍스트란 긴 글이 아니라 우리를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 이 섹션의 두 씨앗은 '관점'과 '예술과 사회의 관계'입니다.

《지식채널e》 〈나는 피카소다〉는 5분 남짓한 짧은 영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영상을 한 권의 철학책처럼 천천히 읽으려고 합니다. 짧은 영상 한 편에서 어떻게 한 권 분량의 생각을 길어 올릴 수 있을까요? 비결은 '왜'를 멈추지 않는 데 있습니다. 그냥 보면 5분이지만, 장면마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이 말은 무슨 뜻일까"를 물으며 보면 5분짜리 영상이 며칠을 곱씹을 텍스트가 됩니다. 좋은 텍스트란 길이가 긴 글이 아니라, 우리를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피카소다〉는 충분히 한 권의 철학책입니다. 영상을 보고 난 뒤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찬종의 말입니다. 또 한 학생, 문수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예술가가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 그 결과값이 그림인 것 같아요." 두 학생의 짧은 감상 속에 이 섹션에서 우리가 펼칠 모든 이야기가 이미 씨앗으로 들어 있습니다. 관점, 그리고 예술과 사회의 관계입니다.

영상에는 인상적인 자막 한 줄이 흐릅니다. "예술가는 그 자체로 정치적 인물이다." 출처가 분명한 말입니다. 피카소는 1945년 3월 프랑스 주간지 『레 레트르 프랑세즈』에 실린 시몬 테리와의 인터뷰에서, 화가란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하며 화가는 눈만 달린 얼간이가 아니라 "동시에 정치적 존재"라고 못 박았습니다.

가슴을 찢는 사건에도, 불타는 사건에도, 기쁜 사건에도 늘 깨어 있으면서 온몸으로 응답하는 존재라는 뜻이었습니다. 우리말 자막의 "정치적 인물"은 이 '정치적 존재(un être politique)'를 옮긴 말입니다. 이 한 문장에서 출발해 보겠습니다. 화가가 왜 정치적 인물이라는 걸까요? 붓을 든 사람이 정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 한 줄 정리피카소는 화가를 눈만 달린 존재가 아니라 '동시에 정치적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02

CHAPTER 02

📌 1. 게르니카 — 그림이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 이 장의 핵심

▸ 〈게르니카〉는 총 한 자루 없이 어떤 연설보다 강력하게 전쟁의 야만을 고발했습니다.

▸ 색을 버리고 흑백을 택한 것조차 하나의 발언이었습니다.

▸ 무엇을 보여 주고 무엇을 보여 주지 않기로 했는지가 이미 그 사람의 입장을 드러냅니다.

1937년 4월 26일, 스페인 내전 중에 나치 독일의 콘도르 군단과 이탈리아 공군이 프랑코 반란군을 도우려고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를 폭격했습니다. 하필 장이 서던 월요일 오후, 무방비 민간인들 위로 폭탄이 쏟아졌습니다. 그때 파리에 머물던 피카소는 마침 그해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 걸 그림을 의뢰받아 놓은 참이었습니다.

그는 준비하던 주제를 버리고 이 학살을 그렸습니다. 그것이 〈게르니카〉입니다. 흔히 벽화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가로 7.8미터, 세로 3.5미터에 이르는 벽 크기의 캔버스 유화입니다. 색은 흑백뿐입니다. 신문 사진처럼 차갑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말, 죽은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어머니, 부러진 칼을 쥔 손이 화면을 가득 메웁니다.

이 그림에는 총이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게르니카〉는 어떤 연설보다 강력하게 전쟁의 야만을 고발했습니다. 전해지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파리를 점령한 독일군 장교가 피카소의 작업실에서 〈게르니카〉를 찍은 사진엽서를 보고 이걸 당신이 했느냐고 묻자, 피카소가 아니라고, 당신들이 한 것이라고 받아쳤다는 이야기입니다.

널리 인용되지만 목격자도 1차 기록도 확인되지 않아 미술사에서는 뒷날 만들어져 굳은 이야기로 봅니다. 그래서 저는 두 사람의 대사를 따옴표에 넣어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가 백 년 가까이 사라지지 않는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화가는 붓 한 자루로 폭격기와 맞섰습니다. 그림이 무기가 된 것입니다.

왜 흑백이었을까요? 한번 상상해 보세요. 만약 〈게르니카〉가 화려한 색으로 그려졌다면, 그 끔찍한 학살이 어딘가 예쁜 그림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피카소는 색을 모두 걷어 냈습니다. 신문의 흑백 사진처럼, 장식 없이 사실만 들이밀었습니다. 화면을 가득 메운 비명과 일그러진 형상은 어느 한 사람을 그린 게 아니라 학살 그 자체의 얼굴입니다. 보는 사람은 아름다움에 취할 틈 없이 곧장 고통과 마주칩니다. 색을 버린 그 선택조차 하나의 발언이었습니다.

💡 한 줄 정리색을 걷어 내자 보는 사람은 아름다움에 취할 틈 없이 곧장 고통과 마주칩니다.

여기서 피카소의 그 문장이 살아납니다. "예술가는 그 자체로 정치적 인물이다." 화가가 무엇을 그릴지 고르는 순간, 그는 이미 세상의 어느 편에 설지를 고르고 있습니다. 꽃을 그릴 수도 있었던 손이 학살을 그리기로 한 것 — 그 선택 자체가 정치입니다. 침묵도 선택이고, 외면도 선택이며, 고발도 선택입니다.

붓을 든 사람에게 '중립'이란 없습니다. 무엇을 보여 주기로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보여 주지 않기로 했는지가 이미 그 사람의 입장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화가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소식을 전하고 어떤 소식을 묻어 둘지 고르는 기자도, 무엇을 찍어 올릴지 고르는 우리도, 매 순간 작은 선택으로 세상의 어느 편에 서고 있습니다.

💡 한 줄 정리무엇을 그릴지 고르는 순간, 이미 세상의 어느 편에 설지를 고르고 있습니다.

🤔 핵심 질문

무엇을 찍어 올리고 무엇을 묻어 둘지 고르는 나의 선택도 '정치적'인가?

 
03

CHAPTER 03

📌 2.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래된 통찰

📌 이 장의 핵심

▸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동물'은 정치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생명체라는 뜻입니다.

▸ 언어·우정·약속·정의 같은 사람의 무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나타납니다.

🔑 폴리스적 동물(zōon politikon)

공동체 안에서 어울려야 비로소 사람다워지는 존재로서의 인간

피카소의 이 생각은 사실 2천 년도 더 된 한 문장과 이어져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1권(1253a)에서 사람을 "폴리스적 동물(zōon politikon)"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말로는 흔히 '정치적 동물'로 옮깁니다. 그리스어 'zoon'은 동물·생명체, 'politikon'은 폴리스(polis), 곧 도시 공동체에 속한다는 뜻입니다. 합쳐서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생명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핵심은 '정치인'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하려던 말은 이것입니다. 사람은 본성상 혼자서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고,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야 비로소 사람다워진다는 것입니다. 무인도에 홀로 살아남은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그는 생존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무늬 — 언어, 우정, 사랑, 약속, 정의 — 를 펼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무늬는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나타납니다.

언어 하나만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말은 혼자서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들어 줄 누군가가 있어야 말이 됩니다. 약속도, 사랑도, 미움도, 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상대'가 있어야 성립합니다. 그러니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들은 거의 전부가 관계 속에서만 피어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동체를 떠나 혼자서도 충분한 존재는 '짐승이거나 신'뿐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짐승도 신도 아니기에, 함께 살아야 비로소 사람이 됩니다. 이 통찰은 오늘날 더 절실합니다. 화면 속에서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시대에, 사람은 여전히 함께라야 사람답다는 오래된 진실을 새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 한 줄 정리공동체 없이 혼자서도 충분한 존재는 짐승이거나 신뿐입니다.

그렇다면 화가 피카소가 자기 시대의 전쟁으로부터 단절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도 폴리스에 속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섹션 1에서 인문학의 셋째 층이 '인간관계와 공동체'였던 것을 떠올려 보세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문장이야말로, 인문학이 왜 한 개인을 넘어 사회와 공동체까지 탐구 대상으로 삼는지를 못 박는 근거입니다.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속한 공동체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진공 속에 떠 있는 점이 아니라, 관계의 그물 위에 놓인 매듭이기 때문입니다.

💡 한 줄 정리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속한 공동체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04

CHAPTER 04

📌 3. 입체파 — 한 사람을 제대로 본다는 것

📌 이 장의 핵심

▸ 입체파는 2차원 평면에 3차원을 담으려고 여러 시점에서 본 모습을 한 화면에 겹쳤습니다.

▸ 그 일그러진 얼굴은 실력 부족이 아니라, 더 온전한 사실에 다가가려는 꿈의 결과입니다.

▸ 사람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그의 여러 면을 한 화폭에 겹쳐 보려는 노력입니다.

🔑 입체파(큐비즘)

여러 시점에서 본 모습을 한 평면에 겹쳐 담는 화풍

이제 피카소의 그림 방식 자체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피카소는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1907~1908년 무렵 '입체파(큐비즘)'라는 새로운 화풍을 열었습니다. 입체파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2차원 평면에 3차원을 담으려는 시도입니다.

2차원과 3차원이라는 말부터 풀고 가겠습니다. 종이는 가로와 세로만 있는 2차원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로·세로·높이가 있는 3차원입니다. 화가는 늘 이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입체인 세상을 어떻게 납작한 종이에 담을 것인가. 평범한 초상화를 떠올려 보세요. 한 사람의 정면만 그립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정면만 보는 일은 없습니다.

친구의 옆모습도 보고, 뒷모습도 보고, 웃을 때와 화낼 때의 얼굴도 봅니다. 그렇게 여러 각도에서 본 모습이 머릿속에서 합쳐져 '그 친구'라는 하나의 상이 만들어집니다. 입체파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습니다. "현준이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3차원 전체를 스캐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왼쪽 옆모습, 정면, 오른쪽 옆모습을 따로따로 본 다음, 그것을 한 평면 위에 겹쳐서 그리는 것 — 그것이 입체파의 발상입니다.

그래서 피카소의 그림 속 얼굴은 코가 옆을 향하는데 두 눈은 정면을 보고 있는, 기이하게 일그러진 모습이 됩니다. 처음 보면 "왜 이렇게 못 그렸지?"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못 그린 게 아닙니다. 드로잉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이전 화가들이 보여 주지 못한 세상에 대한 관심, 실제 세계를 있는 그대로 구현하려는 꿈의 문제입니다. 한 시점에서 본 한 장면은 사실 세계의 한 조각일 뿐인데, 입체파는 그 조각들을 모아 더 온전한 진실에 다가가려 했습니다.

처음 입체파 그림을 본 사람들은 화를 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그림이냐, 애가 그린 것 같다"고요. 그럴 만합니다.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사실적으로 잘 그린 그림'에 익숙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피카소는 묻습니다. 한 시점에서 본 정면 한 장면이 정말 그 사람의 '사실'일까요?

우리가 사실적이라고 믿어 온 그림은, 알고 보면 '한 순간 한 자리에서 본 한 조각'에 불과합니다. 입체파는 그 익숙한 믿음을 깨고, 더 많은 조각을 한 화면에 담아 더 온전한 사실에 다가가려 했습니다. 낯설어 보이는 그림이 사실은 더 정직한 그림이었던 셈입니다.

💡 한 줄 정리낯설어 보이는 그림이 사실은 더 정직한 그림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단원의 가장 중요한 다리 하나를 건너게 됩니다. 입체파가 한 사람을 여러 시점에서 겹쳐 본다는 것은, 타자를 다면적으로 본다는 것과 정확히 같은 동작입니다. 누군가를 한 면만 보고 "쟤는 원래 저런 애야" 하고 단정하는 것은, 정면 한 장만 그려 놓고 그 사람의 전부라고 우기는 것과 같습니다. 친구의 짜증 난 얼굴 한 장면만 보고 그를 다 안다고 여기는 것, 그것이 바로 한 시점의 함정입니다.

사람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그의 여러 면 — 다정한 면과 까칠한 면, 강한 면과 무너지는 면 — 을 한 화폭에 겹쳐 그려 보려는 노력입니다. 피카소는 그림으로 이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게 될 때를 떠올려 보세요. 대개 그 사람의 한 면, 그것도 가장 못난 한 면만 크게 확대해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인 양 보고 있을 때입니다. 입체파의 눈은 그 확대된 한 장면 옆에 다른 장면들을 나란히 놓아 보라고 권합니다.

💡 한 줄 정리누군가를 미워할 때, 우리는 대개 그의 가장 못난 한 면만 확대해 보고 있습니다.

🤔 핵심 질문

나는 누군가를 정면 한 장면만 보고 다 안다고 여기고 있지 않은가?

 
05

CHAPTER 05

📌 4. 원근법 vs 진경산수화 — 세상을 보는 두 개의 눈

📌 이 장의 핵심

▸ 원근법은 한 시점을 정답으로 삼는 '자연 정복적' 태도와 맞닿아 있습니다.

▸ 진경산수화는 자연을 주인으로, 사람을 손님으로 보는 '유기체적' 태도를 담습니다.

▸ 두 그림법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각기 다른 진실을 보여 주는 서로 다른 도구입니다.

🔑 원근법

한 지점에 눈을 고정해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 그리는 기법

🔑 진경산수화

여러 시점을 한 화폭에 담아 자연을 주인으로 그린 조선의 산수화

⚖️ 세상과 사람을 어떤 눈으로 볼 것인가?

✅ 원근법의 눈

• 한 시점에서 본 세계를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재현함

• 정밀한 관찰력이 근대 과학의 눈을 기름

• 다만 내 관점이 정답이라는 전제가 숨어 있음

❌ 진경산수화의 눈

• 여러 시점을 품어 세계를 더 너그럽게 담음

• 상대의 시점도 하나의 진실로 인정함

• 다만 한 장면을 정밀하게 재현하는 데는 약함

피카소의 입체파가 '여러 시점'을 말한다면, 그 배경에는 서양 미술이 오랫동안 떠받들어 온 '하나의 시점'이 있습니다. 바로 원근법입니다. 여기서 동서양이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근본 태도가 갈라집니다. 그림 두 점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겠습니다.

먼저 서양의 원근법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1410년대에 실험으로 그 원리를 눈앞에 보여 주었습니다. 피렌체 세례당을 그린 판에 구멍을 뚫고 거울에 비춰, 그림과 실제 건물이 겹쳐 보이게 한 실험이었습니다. 그것을 이론으로 정리한 사람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입니다. 1435년 라틴어로 쓴 『회화에 관하여(De pictura)』가 그 책이고, 이듬해 이탈리아어판이 나왔습니다. 우리말 서명은 흔히 『회화론』으로 옮깁니다.

원근법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화가가 한 지점에 눈을 고정하고, 그 눈에서 뻗어 나가는 시선을 따라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 그립니다. 화가는 마치 격자무늬 틀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듯 한 시점에서 모든 것을 재구성합니다. 그 결과 그림은 놀랍도록 사실적이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보는 사람의 관점이 곧 정답'이라는 전제입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나는 세상의 주인입니다.

이 태도를 저는 '자연 정복적'이라고 부릅니다. 서양인이 언덕 위에 건물을 지을 때는 언덕을 평탄하게 깎아 냅니다. 자연을 사람의 필요에 맞게 바꾸는 것입니다. 원인을 알면 결과를 조작할 수 있다는 믿음, 사람이 세상의 설계자라는 믿음이 그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이제 동양의 진경산수화를 보겠습니다. 조선의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산 그림을 떠올려 보세요. 진경산수화에는 원근법이 없습니다. 화가는 한 지점에 눈을 고정하지 않습니다. 산 아래에서 본 모습, 산 중턱에서 본 모습,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모습을 한 화폭에 함께 담습니다. 신기하게도 입체파와 닮은 데가 있습니다.

여러 시점을 한 장에 겹쳐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태도의 뿌리는 정반대입니다. 진경산수화에서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산입니다. 금강산이 주인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손님(객)입니다. 사람은 자연을 정복하는 설계자가 아니라, 거대한 자연의 일부로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존재입니다.

이 태도를 저는 '유기체적'이라고 부릅니다. 동양인이 언덕 위에 정자를 지을 때는 언덕을 깎지 않고, 기둥의 높낮이를 조절해 자연의 곡선에 건물을 맞춥니다. 자연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자연에 사람이 맞추는 것입니다. 서양의 눈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 말한다면, 동양의 눈은 "나는 세상의 한 부분일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 한 줄 정리서양의 눈은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 동양의 눈은 '나는 세상의 한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한 가지 더 짚을 점이 있습니다. 원근법이 '틀린' 그림법이고 진경산수화가 '옳은' 그림법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원근법은 한 시점에서 본 세계를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재현해 냈고, 그 정밀한 관찰력이 근대 과학의 눈을 길렀습니다. 진경산수화는 여러 시점을 품어 세계를 더 너그럽게 담았지만, 한 장면을 정밀하게 재현하는 데는 약했습니다. 두 그림법은 각기 다른 진실을 잘 보여 주는 서로 다른 도구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평소 어느 한쪽 눈만 정답으로 여기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일입니다.

왜 이 비교를 길게 했을까요? 이 단원이 던지는 큰 물음 —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 와 곧장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원근법의 눈으로 사람을 보면, 내 관점이 정답이고 상대는 내 시야 안에 배치되는 대상이 됩니다. 진경산수화의 눈으로 사람을 보면, 상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풍경이고 나는 그 앞에 선 손님입니다. 어느 쪽 눈으로 친구를, 부모를, 낯선 사람을 바라볼 것인가. 그림 두 점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것을 일상으로 옮겨 보겠습니다. 친구와 의견이 갈렸을 때, 원근법의 눈은 "내가 옳고 쟤가 틀렸다"고 봅니다. 내 시점이 곧 정답이니까요. 진경산수화의 눈은 다릅니다. "쟤는 쟤 자리에서 세상을 보고 있구나, 그 자리에서는 그렇게 보일 만하다"고 봅니다.

같은 산도 아래에서 보면 우뚝하고 위에서 보면 펼쳐지듯, 같은 일도 서 있는 자리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내 시점을 정답으로 못 박지 않고, 상대의 시점도 하나의 진실로 인정하는 눈 — 그 눈이 다툼을 대화로 바꿉니다. 동양의 옛 그림 한 점이, 오늘 우리 교실의 말다툼에까지 말을 걸어옵니다.

💡 한 줄 정리상대의 시점도 하나의 진실로 인정하는 눈이 다툼을 대화로 바꿉니다.

🤔 핵심 질문

나는 친구와 의견이 갈릴 때 어느 쪽 눈으로 바라보는가?

 
06

CHAPTER 06

📌 5. 다시,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 이 장의 핵심

▸ 어떤 관점을 선택하느냐가 곧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냅니다.

▸ 우리 각자의 삶도 세상을 보는 방식이 매일 한 점씩 찍혀 나가는 그림입니다.

이제 영상을 본 찬종의 첫마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단순한 감상처럼 들리지만, 이 한마디에 이 섹션 전체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입체파는 한 사물에 여러 관점이 있음을 보여 주었고, 원근법과 진경산수화는 세상을 보는 관점 자체가 문명마다 다를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어떤 관점을 선택하느냐가 곧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낸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문수의 말도 다시 새겨 봅시다. "예술가가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 그 결과값이 그림이다." 그렇다면 한 걸음 나아가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삶도 일종의 그림이 아닐까요?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매일매일 한 점씩 찍혀 나가는 그림 말입니다. 피카소가 자기 그림으로 시대에 응답했듯이, 여러분도 자기 삶이라는 화폭에 매일 무언가를 그리고 있습니다. 어떤 시점으로, 무엇을 그릴 것인지 — 그것은 오롯이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07

CHAPTER 07

🎬 6. 명대사 들여다보기 — "나는 피카소다"라는 선언

📌 이 장의 핵심

▸ 피카소에게 그림의 진짜 주인공은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본 나'입니다.

▸ 자기 시선을 가지고 그 시선에 책임지는 사람만이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상의 제목이기도 한 "나는 피카소다"라는 한마디를 잠깐 곱씹어 보겠습니다. 화가가 자기 이름을 이렇게 당당히 내세운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보통 화가는 자기를 지우고 대상을 충실히 그리려 합니다. 사과를 그리면 사과처럼, 사람을 그리면 사람처럼. 그런데 피카소는 반대로 말합니다. 내가 사과를 어떻게 보았는지,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느꼈는지가 곧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림의 진짜 주인공은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본 나'입니다.

이 선언에는 위험과 용기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내가 본 것이 옳다"고 우기면 독선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하나의 진실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끝까지 책임진다"고 말하면 그것은 예술가의 용기가 됩니다. 〈게르니카〉에서 피카소는 "나는 이 학살을 이렇게 보았고, 이 그림에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자기 시선에 책임을 지는 사람 — 그것이 "나는 피카소다"라는 말의 무게입니다.

💡 한 줄 정리'내가 본 것이 옳다'는 독선이지만, '끝까지 책임진다'는 예술가의 용기입니다.

여러분에게 옮겨 보겠습니다. "나는 ○○○다"라는 문장의 빈칸에 자기 이름을 넣어 당당히 말할 수 있으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보는 사람이어야 할까요? 남이 보라는 대로만 보는 사람은 그 빈칸을 채우기 어렵습니다. 자기만의 시선을 가지고, 그 시선에 책임지는 사람만이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피카소의 그림은 그렇게 한 사람의 정체성 — 섹션 4에서 다룰 자기동일성 — 으로까지 우리를 데려갑니다.

 
08

CHAPTER 08

🎬 7. 우리들의 일상 — 단톡방의 한 장면으로 본 입체파

📌 이 장의 핵심

▸ 오해의 대부분은 한 장면만 보고 그 사람의 전부라고 단정하는 한 시점의 함정에서 나옵니다.

▸ 입체파는 사람을 대하는 매일의 태도가 될 수 있습니다.

입체파를 교실의 일상으로 더 가까이 끌어와 보겠습니다. 단체 대화방에서 한 친구가 짧게 "ㅇㅇ"이라고만 답했다고 합시다. 그 한 줄만 보면 "쟤 나한테 화났나?", "무시하나?" 하고 단정하기 쉽습니다. 정면 한 장면만 보고 그 친구를 다 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입체파의 눈으로 다시 보면 어떨까요? 그 친구의 다른 면들을 겹쳐 봅니다. 평소 말수가 적은 면, 그날 시험을 망쳐 기운 없던 면, 사실은 나를 좋아하는 면. 여러 시점을 겹쳐 보면 "ㅇㅇ" 한 줄의 뜻이 전혀 달라집니다.

오해의 대부분은 한 시점의 함정에서 나옵니다. 한 장면, 한 표정, 한 마디만 보고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한번 단정하고 나면 그 뒤로는 그 단정에 맞는 면만 골라 보게 된다는 점입니다. '쟤는 차가운 애'라고 정하고 나면, 그 친구의 따뜻한 행동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차가운 행동만 자꾸 눈에 띕니다. 한 시점이 다른 시점들을 가려 버리는 것입니다.

피카소가 한 얼굴을 그리려고 여러 각도를 겹쳐 보았듯, 사람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그 사람의 여러 면을 한 화폭에 겹쳐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입체파는 미술 시간에만 쓰는 기법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매일의 태도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게 될 때 잠깐 멈춰, "내가 지금 이 사람의 한 면만 확대해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물어보는 것 — 그것이 피카소가 우리에게 건네는 일상의 가르침입니다.

💡 한 줄 정리한번 단정하면 그 단정에 맞는 면만 골라 보게 됩니다.
 
09

CHAPTER 09

📌 영상 들여다보기 정리

📌 이 장의 핵심

▸ 게르니카·정치적 동물·입체파·원근법과 진경산수화·관점·선언·일상 — 일곱 매듭을 다시 묶습니다.

▸ 모든 매듭은 사람을 어떻게 보고 대할 것인가로 모입니다.

피카소를 철학 텍스트로 읽으며 우리가 건진 일곱 개의 매듭을 다시 묶어 보겠습니다.

첫째, 〈게르니카〉는 그림이 어떻게 시대에 맞서는 무기가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둘째, "예술가는 정치적 인물"이라는 말과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만나, 사람이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음을 일러 줍니다. 셋째, 입체파는 한 사람을 여러 시점에서 겹쳐 보는 일이 그 사람을 제대로 보는 길임을 가르칩니다.

넷째, 원근법과 진경산수화는 세상을 보는 두 개의 근본 태도 — 정복과 깃듦 — 를 그림으로 대비시킵니다. 다섯째, 어떤 관점을 고르느냐가 곧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냅니다. 여섯째, "나는 피카소다"라는 선언은 자기 시선에 책임지는 사람만이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음을 일러 줍니다. 일곱째, 입체파는 단톡방의 "ㅇㅇ" 한 줄처럼 매일의 오해를 푸는 태도가 될 수 있습니다.

 
10

CHAPTER 10

❓ 퀴즈

📌 이 장의 핵심

▸ 객관식 10문항으로 핵심 개념을 확인하고, 서술형 3문항으로 자기 생각을 써 봅니다.

객관식

1. 인문학(humanities)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humanitas의 한가운데에 있는 뜻은?
① 신(神) ② 인간(human) ③ 자연(nature) ④ 기술(techne) ⑤ 국가(polis)

2. 피카소가 1937년에 그린, 흑백으로 전쟁의 야만을 고발한 대형 벽화의 이름은?
① 〈아비뇽의 처녀들〉 ② 〈게르니카〉 ③ 〈우는 여인〉 ④ 〈한국에서의 학살〉 ⑤ 〈꿈〉

3.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고 한 말의 뜻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① 모든 인간은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② 인간은 권력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다
③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만 온전한 사람이 된다 ④ 정치는 인간의 가장 더러운 본능이다
⑤ 동물도 정치를 한다

4. 입체파(큐비즘)의 핵심 발상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은?
① 빛과 색의 변화를 순간적으로 포착한다 ② 한 시점에서 가장 사실적으로 그린다
③ 여러 시점에서 본 모습을 한 평면에 겹쳐 담는다 ④ 점을 찍어 형태를 만든다
⑤ 꿈과 무의식의 이미지를 그린다

5. 입체파를 피카소와 함께 1907~1908년 무렵에 연 화가는?
① 마티스 ② 브라크 ③ 세잔 ④ 달리 ⑤ 모네

6. 서양 원근법에 깔린 세계관을 가장 잘 나타낸 표현은?
① 자연이 주인이고 사람은 손님이다 ② 보는 사람의 관점이 곧 정답이다
③ 모든 시점은 똑같이 옳다 ④ 세상은 알 수 없는 신비다 ⑤ 그림은 현실과 무관하다

7.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보여 주는 동양적 세계관으로 알맞은 것은?
① 자연 정복적 ② 한 시점 고정 ③ 사람이 세상의 설계자 ④ 유기체적, 사람은 자연의 일부
⑤ 원근법의 완성

8. "예술가는 그 자체로 정치적 인물이다"라는 말이 뜻하는 바로 가장 알맞은 것은?
① 화가는 반드시 선거에 나가야 한다 ② 무엇을 그릴지 고르는 선택 자체가 세상에 대한 태도다
③ 예술과 정치는 아무 상관이 없다 ④ 정치인만이 예술을 이해한다 ⑤ 그림은 늘 정부를 찬양해야 한다

9. 원근법을 이론으로 정리한 『회화론』(1435)의 저자로 알려진 인물은?
① 브루넬레스키 ② 알베르티 ③ 다 빈치 ④ 미켈란젤로 ⑤ 라파엘로

10. 입체파의 발상과 진경산수화의 공통점으로 알맞은 것은?
① 둘 다 한 시점만 사용한다 ② 둘 다 여러 시점을 한 화면에 담는다
③ 둘 다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본다 ④ 둘 다 흑백만 사용한다 ⑤ 둘 다 인물을 그리지 않는다

서술형

11. 입체파가 "한 사람을 여러 시점에서 겹쳐 본다"는 발상이, 친구나 가족 같은 실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지 자기 경험을 들어 200자 내외로 쓰시오.

12. 서양의 원근법과 동양의 진경산수화는 세상을 보는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고, 둘 중 어느 태도가 오늘날 사람과 자연을 대하는 데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근거를 들어 300자 내외로 쓰시오.

13. "예술가는 그 자체로 정치적 인물이다"라는 피카소의 말에 비추어, 그림뿐 아니라 노래·영화·웹툰 같은 작품도 '정치적'일 수 있는지 구체적 예를 하나 들어 자기 생각을 200자 내외로 쓰시오.

정답 및 해설

1. ② / humanitas의 어원에는 human(인간)이 들어 있습니다. 인문학의 심장은 '사람'입니다.
2. ② / 1937년 게르니카 폭격에 대한 고발로 그린 흑백 대형 벽화가 〈게르니카〉입니다.
3. ③ / '정치적 동물'은 정치인을 뜻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만 사람다워진다는 뜻입니다.
4. ③ / 입체파는 2차원 평면에 3차원을 담으려고 여러 시점을 겹쳐 그립니다.
5. ② / 피카소와 브라크가 함께 입체파를 열었습니다.
6. ② / 원근법은 한 시점을 정답으로 삼는 자연 정복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습니다.
7. ④ / 진경산수화는 자연을 주인으로, 사람을 손님으로 보는 유기체적 세계관을 담습니다.
8. ② / 무엇을 그릴지 고르는 선택 자체가 세상에 대한 태도이므로 정치적입니다.
9. ② / 알베르티의 『회화론』(1435)이 원근법을 이론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0. ② / 형식상으로는 둘 다 여러 시점을 한 화면에 담지만, 그 바탕의 세계관은 정복과 깃듦으로 정반대입니다.

✅ 오늘의 정리

1

〈게르니카〉처럼 무엇을 그릴지 고르는 선택 자체가 세상에 대한 태도다.

2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만 온전한 사람이 되는 '정치적 동물'이다.

3

입체파의 눈은 한 사람을 여러 시점에서 겹쳐 보라고 권한다.

4

원근법과 진경산수화는 정복과 깃듦이라는 세상을 보는 두 태도를 대비시킨다.

5

자기 시선에 책임지는 사람만이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다.

📌·🔑·💡·🤔·✅ 표시 상자는 이해를 돕기 위한 편집 요약입니다. 본문은 원문 전문 그대로입니다.

마지막 수정됨: 수요일, 19 8월 2026, 5:40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