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tion2-이야기속으로

 
 

교1-101 인문학이란 · 섹션 2 · 이야기 속으로

교실의 열한 가지 이야기
곁에 있는 인문학

 

또래 학생들이 교실에서 던진 열한 개의 물음 속에서 인문학의 가장 깊은 질문을 찾아봅니다.

스스로 솟은 물음

고통, 사랑, 혐오

캐묻기

안다고 믿는 것의 빈틈

타인

고칠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일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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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인문학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거창한 철학자의 말이 아니라 여러분 또래가 던진 질문과 겪은 일들입니다. 친구의 한마디, 헤어진 연인 이야기, 부모와의 다툼 속에 이미 인문학의 깊은 물음들이 숨어 있습니다.

📌 이야기의 흐름

1

호기심을 깨우는 물음들에서 시작해

2

사람 사이의 공감으로

3

사고의 훈련으로

4

마지막에는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로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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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 고통

고통이나 악을 없앨 수는 없을까

 

어느 해 E반에서 최근 마음에 남은 질문을 발표해 보자고 했더니, 세 학생의 물음이 유난히 깊었습니다. 첫 번째, 준우의 물음입니다.

1

악의 문제

신이 선하고 전능하다면 왜 세상에 고통이 있는가. 막지 못한다면 전능하지 않고, 막지 않는다면 선하지 않은 것 아닌가 — 신학이 가장 어려운 숙제로 여겨 온 물음입니다.

2

스스로 솟아오른 물음

열일곱 살 학생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제 입으로 이 물음을 꺼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인문학의 한복판에 발을 들인 사건입니다.

답을 못 찾았다고 실패가 아닙니다. 그 물음을 품는 동안 준우의 마음은 분명히 한 뼘 더 깊어졌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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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 사랑

진짜 사랑이란 뭘까

 

“

나를 사랑하는 게 진짜 사랑인 것 같아요.

대현 — 진짜 사랑이란 뭘까요라고 묻고 잠시 뒤 스스로 내놓은 답

1

빈 컵의 비유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이 남을 온전히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빈 컵으로는 남에게 물을 따라 줄 수 없습니다.

2

새어 나오는 미움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은 남에게도 가시를 세우기 쉽습니다. 자기혐오는 종종 남을 향한 미움으로 새어 나옵니다.

이기적인 말이 아니라 남을 잘 사랑하기 위한 토대입니다. 나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라야, 남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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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 혐오

혐오와 편견은 왜 이렇게 많을까

 

“

질투 때문인 것 같아요. 자기가 부족하니까 남을 헐뜯는 거죠.

소리 — 왜 세상에는 혐오와 편견이 이렇게 많을까요라고 묻고 붙인 답

1

르상티망(ressentiment)

니체는 1887년 『도덕의 계보』에서, 되갚을 힘이 없는 사람이 상상 속의 복수로 자기를 위로할 때 생기는 마음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프랑스어로 '원한, 앙심'입니다.

2

안으로 곪은 분노

직접 맞서지 못한 분노가 안으로 곪아 '저들은 사실 나쁜 놈들'이라는 식의 비뚤어진 평가로 바뀝니다. 니체는 이를 노예 도덕이 태어나는 자리라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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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 두 갈래 길

끌어올리기와 끌어내리기

 
나보다 잘난 사람을 볼 때마음의 움직임
첫째 길'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 자기를 끌어올린다
둘째 길 (르상티망)'사실 별것 아니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 상대를 끌어내린다
1

악플의 뿌리

온라인에서 잘나가는 사람에게 쏟아지는 악플의 상당수가 이 마음에서 나옵니다. 소리의 '질투'라는 답은 백여 년 전 철학자가 파고든 개념의 입구를 제 힘으로 찾은 셈입니다.

혐오가 자기 부족함에서 온다면, 남을 깎는 대신 자기를 채울 때 혐오는 줄어듭니다. 대현의 답과 소리의 답이 서로 손을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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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 두 갈래 길 · 이어서

끌어올리기와 끌어내리기

 

🤔 생각해 볼 질문

내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 그 미움은 정말 그 사람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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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둘

공부할 이유 100가지

 

"열심히는 하는데 집중이 안 돼요." 집중의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총량과 밀도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권했습니다. 왜 공부하는지 이유를 100가지 적어 보라고.

1

50가지만 적어도

그 50가지를 적는 동안 머릿속이 '나는 왜 공부하는가'라는 질문을 붙들고 작동합니다. 이유가 또렷해지면 집중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2

성공한 사람 있어요?

"음… 아직 없습니다." 교실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인문학적 방법은 즉효약이 아니라 체질을 바꾸는 일입니다.

3

충격이라는 이유

남들 수준에 충격을 받아 공부를 시작한 학생도 있습니다. 충격은 밖에서 온 이유, 100가지 목록은 안에서 캐낸 이유입니다. 어느 쪽이 더 오래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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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둘

왜 하필 100가지였을까

 
1

뻔한 이유는 금세 바닥난다

좋은 대학 가려고, 부모님이 좋아하셔서, 친구들이 하니까 — 다섯 가지나 열 가지는 누구나 쉽게 적습니다.

2

마음 깊은 곳의 이유

내가 궁금한 것을 끝까지 알고 싶어서, 무시당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언젠가 누군가를 돕고 싶어서.

100가지는 목표가 아니라 미끼입니다. 그리고 밖에서 주어진 이유는 명령이지만, 안에서 캐낸 이유는 자발성의 엔진입니다.

🤔 생각해 볼 질문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밖에서 주어진 것인가, 안에서 캐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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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셋

성희의 효도 문답 — 소크라테스 흉내

 

질문에 다시 질문을 던져 상대가 자기 생각의 빈틈을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방법, 이것을 산파술 혹은 문답법이라 부릅니다.

성희다른 반 학생
효도해야 하는 거 알지?네, 알아요—
불효를 저지른 적 있어?잠깐 머뭇거리다 "있어요"자신 있게 "없습니다!"
불효의 기준이 뭐야?—"기준이… 애매하네요. 저질렀을 수도 있겠어요"

우리는 '효도' 같은 말을 매일 쓰면서도 기준을 또렷이 갖고 있지 않습니다. 안다고 믿는 것을 캐물어 나는 사실 모르고 있었구나를 깨닫게 하는 것이 소크라테스가 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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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셋

머뭇거린 사람의 깊이

 
1

"없습니다!"

효도의 기준이 흐릿했기에 그렇게 답할 수 있었습니다. 기준이 흐릿하니 자기가 어긋난 줄도 몰랐던 것입니다.

2

"있어요"

머뭇거린 성희는 효도가 무엇인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기준이 또렷한 사람일수록 자기 부족함이 잘 보이기 때문입니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 이 차이는 뒤에서 소크라테스를 만날 때 다시 또렷해집니다.

🤔 생각해 볼 질문

사랑·정의·예의·행복 가운데 하나를 골라, 내 나름의 기준을 한 문장으로 적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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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넷

네 사람의 연애 인터뷰

 
1

준서 "그냥 이해해요"

A반 준서는 공부를 이유로 헤어졌다 다시 만났습니다. "이제 다 포기했어요." 포기는 자기 고집을 내려놓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2

기범 "고쳐 쓰는 물건이 아니잖아요"

B반 기범은 성격이 안 맞아 헤어졌습니다. 선을 넘는 후배와 조용히 관계를 끊는 야구부 홍민도 같은 전제입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안 맞으면 끊는다.

3

경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려고요"

C반 경태는 너무 많이 싸워서 헤어진 뒤 내 주장만 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실제로 지금 여자친구가 지적하는 점을 고쳤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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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넷

존중인가, 회피인가

 
안 맞으면 끊는 길 (기범·홍민)받아들이고 자기를 고치는 길 (준서·경태)
전제사람은 고쳐 쓰는 물건이 아니다입장을 바꿔 보면 나도 바뀔 수 있다
태도관계를 정리한다상대를 받아들이고 자기를 고친다
1

존중으로 볼 때

상대를 내 입맛대로 바꾸려 들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2

회피로 볼 때

관계가 어려울 때 쉽게 등을 돌리는 핑계가 되고, '원래 저런 애니까'라며 더 알아보려는 노력을 멈추게 합니다.

같은 말이 존중도 회피도 될 수 있습니다. 갈림길은 상대를 더 알아보려 했는가에 있습니다. 이 차이는 뒤에서 레비나스와 함께 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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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다섯

중2병과 전체주의

 

한때 어떤 사상에 빠져 "전체주의에 빠졌었다"는 학생. 어머니가 말리자 "엄마가 전체주의에 대해 뭘 알아요", 아버지가 "그러면 밥 안 준다"고 하자 이틀을 굶다가 "죄송합니다."

1

자라는 과정

중2병은 자기만의 세계관을 처음 세워 보려는 격렬한 시도입니다. 부모가 준 옷이 답답해지면 자기 옷을 지어 입으려 합니다. 첫 시도가 서툴러 극단으로 치우칠 뿐입니다.

2

"엄마가 뭘 알아요"

부모는 나를 다 안다고 착각한다는 항변이자, 내 세계를 인정받고 싶다는 외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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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다섯

누르기와 물어 주기

 
힘으로 누르면"밥 안 준다" — 신념은 잠깐 꺾이지만 마음은 닫힌다
물어 주면"그 생각에 빠진 이유를 말해 줄래?" — 자기 세계를 말로 펼치며 스스로 빈틈을 본다

어느 쪽이 아이를 더 자라게 할까요? 이 장면은 뒤에서 다룰 부모-자녀 사이의 90퍼센트 착각과 맞닿습니다.

🤔 생각해 볼 질문

한때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었다가 지금은 다르게 보는 생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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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여섯

질문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

질문을 하는 사람은 질문을 만드는 사고가 자라고요, 듣는 사람도 머릿속에서 이론이 정리되면서 같이 발전하는 것 같아요.

질문에 관한 토론에서 한 학생

1

모두를 자라게 하는 질문

모르는 걸 확실히 알려고 질문한다는 경준의 출발에서, 한 사람이 던진 물음이 교실 전체의 사고를 깨운다는 통찰로 나아갔습니다.

좋은 질문 하나는 던진 사람만이 아니라 그 자리의 모두를 자라게 합니다.

🤔 생각해 볼 질문

한 사람의 질문이 모두를 자라게 한다면, 질문하지 않는 교실은 무엇을 잃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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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여섯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 멋진 설명을 한 학생은 평소 질문을 잘 하지 않던 학생이었습니다. "본인은 정작 질문을 잘 안 하면서, 질문이 좋다는 건 아주 잘 아는구나."

1

우리 대부분의 모습

운동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일찍 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휴대전화를 놓지 못합니다.

2

묻는 데 드는 용기

질문의 가치를 머리로 아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손을 들고 묻는 것은 용기가 듭니다. 틀릴까 봐, 우스워 보일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은 머리로만 아는 학문이 아니라 직접 물어 가며 몸에 새기는 학문입니다. 뒤에서 소크라테스의 '지행합일'로 다시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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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일곱

빅뱅은 본 적 없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03차시 무렵 우진의 물음. "빅뱅은 아무도 관찰한 적이 없는데, 과학자들은 그게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아냈어요?" 누구도 138억 년 전으로 돌아가 우주의 시작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1

실마리는 우진 자신이

"우주가 지금도 팽창하고 있어서요." 팽창을 거꾸로 되감으면 우주는 점점 작아지고, 끝까지 되감으면 한 점으로 수렴합니다.

2

관찰 + 추론

직접 보지 않고도 관찰된 사실(팽창)에 논리적 추론(역산)을 더해 보이지 않는 과거에 도달한 것입니다.

우주의 나이는 오랫동안 137억 년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플랑크 위성이 우주 배경 복사를 정밀하게 측정한 뒤로는 약 138억 년이 표준값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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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일곱

보이지 않는다고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를 왜 인문학 단원에 넣었을까요? "왜 사는가", "악은 왜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 인문학의 물음도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1

단서와 논리

관찰할 수 있는 작은 단서에서 출발해 논리로 끝까지 밀고 가면, 보이지 않는 큰 진실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2

같은 종류의 추론

빅뱅을 알아낸 사고법과 사람 마음의 깊이를 헤아리는 사고법은 도구만 다를 뿐 같은 종류의 추론입니다.

🤔 생각해 볼 질문

친구의 표정만 보고 마음을 짐작한 일처럼, '단서 + 논리'로 알아낸 경험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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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여덟

동물농장 — 돼지와 사람을 분간할 수 없다

 

2025년 G반의 한 학생이 조지 오웰이 1945년에 낸 『동물농장』을 읽고 물었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도대체 어디까지인 거예요?"

1

혁명

동물들이 인간 농장주를 몰아내고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계명을 내겁니다.

2

타락

혁명을 이끈 돼지들이 점점 인간 지배자를 닮아 갑니다. 마지막 장면, 창밖의 동물들은 어느 쪽이 돼지이고 어느 쪽이 사람인지 분간하지 못합니다.

“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어느새 한 줄로 바뀌어 있던 벽의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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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여덟

권력의 무한 루프

 

되물었습니다. "권력을 잡았을 때 더 도덕적이고 선한 권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애초에 권력을 잡고 싶다는 발상 자체가 욕구가 심한 거 아니에요?

한 학생의 날카로운 답 — 잡으면 타락하고, 누가 엎고, 또 타락하는 무한 루프

1

역사 순환론

새 왕조가 부패한 옛 왕조를 무너뜨리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 새 왕조도 부패해 무너집니다.

2

불교의 윤회

모든 것이 돌고 돈다는 사상. 돼지들이 인간 주인을 닮아 간 것은 동화가 아니라 인류 역사가 수없이 반복해 온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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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여덟

루프를 늦추는 인류의 지혜

 

권력자가 스스로 깨끗해지길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권력을 어떻게 견제하고 감시할지 끊임없이 묻는 시민이 있어야 합니다.

📌 루프를 늦추는 장치

1

권력을 나눈다

2

임기를 정한다

3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게 한다

이 장치들은 모두 "권력은 타락하기 쉽다"는 인문학적 통찰에서 나왔습니다. 묻기를 멈추는 순간, 루프는 다시 돌기 시작합니다.

🤔 생각해 볼 질문

권력이 타락하는 무한 루프를 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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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아홉

잠들기 전의 물음들

 
1

태정 — 배타

사람들은 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배타적으로 대할까요 → 뒤에서 만날 '타자와 환대'로.

2

주원 — 하루 돌아보기

주원은 잠들기 전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떠올리며 하루를 돌아본다고 했습니다.

3

호준 — 왜 사느냐

"태어났으니까요"라는 답 → '삶의 의미'로.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저절로 솟아오른 물음입니다. 고대 철학자들도 매일 밤의 자기 점검을 수련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 생각해 볼 질문

잠들기 전 "오늘 나는 어떻게 살았나"를 물어본다면,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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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열

어느 아버지의 8년

 

선생님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둘째 아이가 네 살 무렵 시간에 대한 강박과 분노를 다스리기 어려운 상태를 보였고, 약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길을 택했습니다.

1

25분

육아 전문가가 아이를 진정시키는 데 보통 3분에서 5분이 걸린다는데, 아이는 25분이 걸렸습니다. 우는 소리에 아동학대 신고로 경찰이 출동한 일도 있었습니다.

2

고치려 했던 몇 해

고치려 들수록 아이도 저도 더 힘들어졌습니다. 고치려 한 것은 아이 자신이 아니라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아이'였습니다.

“

이 흰머리, 이게 지난 8년 동안 만들어진 흰머리예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흰머리를 가리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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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열

자녀도 끝내 타인이다

 

내 몸에서 나왔고 내가 키웠지만, 그 아이의 마음은 끝내 내가 다 알 수 없는 하나의 세계입니다.

1

전면적인 수용

고치려 들지 않고, 다 안다고 착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8년 끝에 이른 답입니다.

2

수용은 방치가 아니다

잘못된 행동을 그냥 두라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를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행동은 함께 고쳐 갈 수 있지만, 사람 자체는 받아들일 대상입니다.

🤔 생각해 볼 질문

누군가를 고치려는 사랑과 받아들이는 사랑은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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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열하나

여섯 살의 독일, 어른의 독일

 
1

여섯 살의 독일

아버지가 거의 40년을 산 독일에서 1년을 살았습니다. 동양인 남자아이였지만 동네 아이들과 뛰놀며 골목대장 노릇까지 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외국인'이라는 범주가 아예 없었습니다.

2

어른의 독일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갔을 때는 "이 사회의 주류에는 영원히 끼지 못하겠구나" 하고 느끼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거리가 달라진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범주'가 달라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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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열하나

범주가 벽이 될 때

 

같은 사람, 같은 나라. 달라진 것은 단 하나, 머릿속에 '인종'과 '국적'과 '주류·비주류'라는 범주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1

분류의 두 얼굴

자라면서 세상을 더 잘게 분류하는 법을 배웁니다. 편리할 때도 많지만, 그 분류가 사람을 나누고 벽을 세우면 여섯 살 때는 없던 차별이 자라납니다.

2

아이가 편견이 적은 이유

마음이 더 착해서가 아니라, 아직 그 분류를 덜 배웠기 때문입니다.

🤔 생각해 볼 질문

여섯 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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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열하나

거리 실험과 이력서 실험

 
1

서울 도심의 거리 실험

똑같은 말로 길을 묻되 겉모습만 바꾸자, 서구권 사람으로 보일 때와 동남아시아 출신으로 보일 때 답해 주는 비율이 눈에 띄게 갈렸습니다.

2

이력서 실험

미국의 두 경제학자가 이름만 바꾼 똑같은 이력서를 5,000통 가까이 뿌리자, 백인 이름 쪽이 면접 연락을 50퍼센트가량 더 받았습니다.

방송 실험은 표본이 작고 조건 통제가 느슨해 구체적 숫자를 대지 않습니다. 방향만은 정식 연구에서도 되풀이 확인되었습니다.

응답을 거른 사람들이 특별히 악한 것은 아닙니다. 무의식에 새겨진 범주가 손과 발을 다르게 움직이게 했습니다. 새겨진 것이라면 다시 들여다보고 고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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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이야기

열한 개의 실이 모이는 곳

 

준우·대현·소리의 세 물음, 공부의 이유, 성희의 효도, 네 사람의 연애, 중2병, 질문, 빅뱅, 동물농장, 잠들기 전의 물음, 아버지의 8년, 여섯 살의 독일. 모두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돌고 있습니다.

1

망원경

멀리 있는 별을 당겨 보듯 한 사람의 깊은 속을 들여다봅니다.

2

현미경

미세한 것을 키워 보듯 일상의 작은 말 한마디에 담긴 마음을 확대해 봅니다.

인문학의 재료는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다음 섹션에서는 화가 피카소를 철학자처럼 읽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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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정리

이야기 속으로를 마치며

 

✅ 오늘의 정리

1

스스로 솟아오른 물음은 그 자체로 이미 인문학의 출발이다

2

안다고 믿는 것을 캐물을 때 비로소 자기 생각의 빈틈이 보인다

3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르다 — 인문학은 물어 가며 몸에 새기는 학문이다

4

타인은 끝내 다 알 수 없는 세계이며, 고칠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일 대상이다

5

편견은 자라며 새겨진 범주에서 오기에, 다시 들여다보고 고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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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1-101 인문학이란 · SECTION 2 · 이야기 속으로

섹션 2

이야기 속으로

또래 학생들이 교실에서 던진 열한 개의 물음 속에서 인문학의 가장 깊은 질문을 찾아봅니다.

📖 전문 12장⏱ 읽기 약 23분

이번 섹션에서는 교실에서 실제로 오갔던 이야기들을 함께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거창한 철학자의 말이 아니라, 여러분 또래의 학생들이 던진 질문과 겪은 일들입니다. 인문학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친구가 던진 한마디, 헤어진 연인 이야기, 부모와의 다툼 속에 이미 인문학의 가장 깊은 물음들이 숨어 있습니다.

열한 개의 이야기를 차례로 펼쳐 보겠습니다. 각 이야기 끝에는 함께 생각해 볼 두 개의 물음을 붙여 두었습니다. 배치에는 흐름이 있습니다. 먼저 호기심을 깨우는 물음들에서 시작해, 사람 사이의 공감으로, 사고의 훈련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로 닫습니다.

 
01

CHAPTER 01

❓ 이야기 하나 — 세 학생의 질문: 고통, 사랑, 혐오

📌 이 장의 핵심

▸ 고통과 악, 진짜 사랑, 혐오와 편견 — 세 학생이 스스로 던진 물음은 이미 인문학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 나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라야 남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 혐오는 자기를 올리는 대신 남을 깎으려는 마음, 곧 르상티망에서 자라나기 쉽습니다.

🔑 악의 문제

신이 선하고 전능하다면 왜 세상에 고통이 있는가라는 오래된 물음

🔑 르상티망

되갚을 힘이 없는 사람의 분노가 안으로 곪아 상대를 깎아내리는 원한의 마음

배경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어느 해 E반에서 "최근 마음에 남은 질문을 하나씩 발표해 보자"고 했더니, 세 학생의 물음이 유난히 깊었습니다.

준우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고통이나 악을 없앨 수는 없는 걸까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붙들고도 풀지 못한 물음입니다. 신은 왜 악을 그냥 두는가, 인간은 왜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가. 신학에서는 이것을 '악의 문제'라 부르며 가장 어려운 숙제로 여겨 왔습니다. 만약 신이 선하고 전능하다면 왜 세상에 고통이 있는가, 고통을 막지 못한다면 전능하지 않은 것이고 막지 않는다면 선하지 않은 것 아닌가 — 이 물음 앞에서 수많은 사상가가 평생을 고민했습니다.

열일곱 살 학생이 이 물음을 제 입으로 꺼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인문학의 한복판에 발을 들인 사건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솟아오른 물음이기 때문입니다. 답을 못 찾았다고 실패가 아닙니다. 수천 년 동안 누구도 깔끔한 답을 못 찾았으니까요. 그러나 그 물음을 품는 동안 준우의 마음은 분명히 한 뼘 더 깊어졌을 것입니다.

대현은 "진짜 사랑이란 뭘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더니 잠시 뒤 스스로 답을 내놓았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게 진짜 사랑인 것 같아요." 이 대답에는 깊은 통찰이 들어 있습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이 남을 온전히 사랑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빈 컵으로는 남에게 물을 따라 줄 수 없습니다. 내 안이 메말라 있으면, 남에게 줄 사랑도 메마릅니다.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은 남에게도 가시를 세우기 쉽습니다. 자기혐오는 종종 남을 향한 미움으로 새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대현의 답은 이기적인 말이 아니라, 오히려 남을 잘 사랑하기 위한 토대를 짚은 말입니다. 나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라야, 남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뒤에서 만날 '긍정'과 '자기 수용'의 이야기가 여기서 이미 싹트고 있습니다.

💡 한 줄 정리빈 컵으로는 남에게 물을 따라 줄 수 없습니다.

소리는 "왜 세상에는 혐오와 편견이 이렇게 많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고는 자기 나름의 답을 붙였습니다. "질투 때문인 것 같아요. 자기가 부족하니까 남을 헐뜯는 거죠." 저는 이 대목에서 니체를 떠올렸습니다.

니체는 1887년에 낸 『도덕의 계보』 첫 번째 논문에서, 실제로 되갚을 힘이 없는 사람이 상상 속의 복수로 자기를 위로할 때 생기는 마음을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이것을 "노예 도덕이 태어나는 자리"라고 적었습니다. 르상티망은 프랑스어로 '원한, 앙심'을 뜻합니다. 직접 맞서지 못한 분노가 안으로 곪아 '저들은 사실 나쁜 놈들'이라는 식의 비뚤어진 평가로 바뀌는 것입니다.

조금 더 풀어 보겠습니다. 누군가 나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하고 자기를 끌어올리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게 너무 힘드니까 '사실 저 사람은 별것 아니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다'라고 상대를 끌어내리는 길입니다. 르상티망은 두 번째 길입니다. 자기를 올리는 대신 남을 깎아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마음입니다.

온라인에서 잘나가는 사람에게 쏟아지는 악플의 상당수가 이 마음에서 나옵니다. 소리의 '질투'라는 답은, 백여 년 전 철학자가 평생을 들여 파고든 개념의 입구를 제 힘으로 더듬어 찾은 셈입니다. 그리고 소리의 답에는 처방까지 들어 있습니다. 혐오가 자기 부족함에서 온다면, 남을 깎는 대신 자기를 채우는 쪽으로 마음을 돌릴 때 혐오는 줄어듭니다. 대현이 "나를 사랑하는 게 진짜 사랑"이라 한 것과, 소리의 답이 서로 손을 잡습니다.

💡 한 줄 정리혐오가 자기 부족함에서 온다면, 남을 깎는 대신 자기를 채울 때 혐오는 줄어듭니다.

생각하기 1. 준우·대현·소리의 질문은 각각 인문학의 어떤 영역(고통·사랑·공동체)과 맞닿아 있을까요? 셋 가운데 지금 내 마음에 가장 가까운 질문은 무엇입니까?

생각하기 2. 소리는 혐오의 원인을 '자기 부족함'에서 찾았습니다. 그렇다면 자기를 더 단단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남을 덜 미워하게 될까요? 내 경험에 비추어 따져 봅시다. 또, 내가 누군가를 미워했던 순간을 떠올려, 그 미움이 정말 그 사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 안의 무언가 때문이었는지 솔직하게 들여다봅시다.

🤔 핵심 질문

내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 그 미움은 정말 그 사람 때문인가?

 
02

CHAPTER 02

📌 이야기 둘 — 공부할 이유 100가지

📌 이 장의 핵심

▸ 공부할 이유 100가지를 적는 과정 자체가 안 보이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입니다.

▸ 밖에서 주어진 이유는 명령이지만, 안에서 캐낸 이유는 자발성의 엔진입니다.

한 학생이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선생님, 저는 열심히는 하는데 집중이 안 돼요. 책상에 오래 앉아 있어도 머리에 안 들어와요." 집중의 문제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총량과 밀도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권했습니다. "조용한 공간에 혼자 앉아서, 내가 왜 공부를 하는지 그 이유를 100가지 적어 봐."

학생이 놀라 묻습니다. "100가지나요?" 저는 웃으며 답합니다. "50가지만 적어도 너는 이미 공부를 하고 있는 거야. 왜냐하면 그 50가지를 적는 동안 네 머릿속이 '나는 왜 공부하는가'라는 질문을 붙들고 작동하기 때문이지. 이유가 또렷해지면 집중은 저절로 따라와."

그러자 다른 학생이 짓궂게 묻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람 있어요?" 저는 한참 웃다가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음… 아직 없습니다." 교실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지만, 사실 이 솔직함에도 작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100가지를 적는다고 당장 성적이 오르는 마법은 없습니다. 인문학적 방법은 즉효약이 아니라 체질을 바꾸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이 농담 뒤에 진지한 이야기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같은 반의 어떤 학생은 중학교 2학년 기말고사 무렵부터 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계기를 물으니 "남들 수준에 충격을 받아서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충격도 일종의 이유입니다. 다만 충격은 밖에서 온 이유이고, 100가지 목록은 안에서 캐낸 이유입니다. 어느 쪽이 더 오래갈까요?

왜 하필 100가지였을까요? 다섯 가지나 열 가지는 누구나 쉽게 적습니다. "좋은 대학 가려고, 부모님이 좋아하셔서, 친구들이 하니까." 그런데 이런 뻔한 이유는 금세 바닥납니다. 100가지를 적으려면 뻔한 이유를 넘어, 정말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이유까지 길어 올려야 합니다.

"내가 궁금한 것을 끝까지 알고 싶어서", "무시당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언젠가 누군가를 돕고 싶어서." 100가지를 채우는 과정 자체가, 안 보이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입니다. 그러니 100가지는 목표가 아니라 미끼입니다. 그 많은 숫자를 핑계 삼아, 평소 들여다보지 않던 내 안을 깊이 파게 만드는 미끼입니다.

💡 한 줄 정리100가지는 목표가 아니라, 내 안을 깊이 파게 만드는 미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뒤에 길게 다룰 한 가지 개념의 씨앗을 만납니다.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했으니까" — 이것은 이유가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스스로 의미를 찾아낸 것이라야 합니다. 밖에서 주어진 이유는 명령이지만, 안에서 캐낸 이유는 자발성의 엔진입니다.

생각하기 1. 내가 지금 공부하는 이유를 솔직하게 다섯 가지만 적어 봅시다. 그중 '밖에서 주어진 이유'와 '안에서 캐낸 이유'는 각각 몇 개입니까?

생각하기 2. 이유가 또렷하면 정말 집중이 잘될까요? 반대로, 이유 없이도 잘되는 일은 없을까요? 내 경험을 떠올려 봅시다.

🤔 핵심 질문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밖에서 주어진 것인가, 안에서 캐낸 것인가?

 
03

CHAPTER 03

📌 이야기 셋 — 성희의 효도 문답

📌 이 장의 핵심

▸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안다고 믿는 것을 캐물어 스스로 빈틈을 발견하게 합니다.

▸ 기준이 또렷한 사람일수록 자기 부족함이 잘 보입니다.

🔑 산파술(문답법)

질문에 질문을 거듭해 상대가 자기 생각의 빈틈을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방법

소크라테스가 즐겨 쓴 방법이 있습니다.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답에 다시 질문을 던져, 마침내 상대가 자기 생각의 빈틈을 스스로 발견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것을 '산파술' 혹은 '문답법'이라 부릅니다. 교실에서 이 방법을 흉내 내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성희에게 물었습니다. "효도해야 한다는 거, 알지?" 성희가 답합니다. "네, 알아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불효를 저지른 적 있어?" 성희가 잠깐 머뭇거리더니 "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정직한 대답입니다. 그런데 다른 반에서 같은 질문을 했더니 한 학생이 자신 있게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되물었습니다. "그럼 네가 생각하는 불효의 기준이 뭐야?" 학생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이 흔들립니다. "기준이… 애매하네요. 저질렀을 수도 있겠어요."

이 짧은 문답에 인문학의 핵심 동작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효도'나 '불효' 같은 말을 매일 쓰면서도 그 기준을 또렷이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한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안다고 믿는 것을 한 번 더 캐물어, '나는 사실 이걸 정확히 모르고 있었구나'를 깨닫게 하는 것.

여기서 재미있는 역설이 보입니다. "불효한 적 없다"고 자신 있게 답한 학생은, 사실 효도의 기준이 흐릿했기에 그렇게 답할 수 있었습니다. 기준이 흐릿하니 자기가 어긋난 줄도 몰랐던 것입니다. 반대로 "있어요"라고 머뭇거린 성희는, 효도가 무엇인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기준이 또렷한 사람일수록 자기 부족함이 잘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는 잘하고 있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보다, "내가 잘하고 있나?" 하고 머뭇거리는 사람이 대개 더 깊이 있는 사람입니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 이 둘 사이의 차이는 뒤에서 소크라테스를 만날 때 다시 또렷해집니다.

💡 한 줄 정리'잘하고 있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보다 머뭇거리는 사람이 대개 더 깊이 있습니다.

생각하기 1. 내가 매일 쓰면서도 정확한 기준을 대기 어려운 말이 있습니까?(예: 사랑·정의·예의·행복) 그중 하나를 골라 내 나름의 기준을 한 문장으로 적어 봅시다.

생각하기 2. "불효한 적 없다"고 자신 있게 답한 학생과, "있다"고 머뭇거린 학생 가운데 누가 더 효자에 가까울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04

CHAPTER 04

📌 이야기 넷 — 네 사람의 연애 인터뷰

📌 이 장의 핵심

▸ 연애 이야기에서 사람을 대하는 두 갈래 태도가 드러납니다 — 안 맞으면 끊는 길과 받아들이고 자기를 고치는 길.

▸ 같은 말이 존중이 될 수도 회피가 될 수도 있으며, 갈림길은 상대를 더 알아보려 했는가에 있습니다.

⚖️ 「사람은 고쳐 쓰는 물건이 아니다」는 어떤 태도인가?

✅ 존중으로 볼 때

• 상대를 내 입맛대로 바꾸려 들지 않겠다는 뜻

❌ 회피로 볼 때

• 관계가 어려울 때 쉽게 등을 돌리는 핑계가 됨

• 더 알아보려는 노력을 멈추게 함

사랑만큼 인문학적인 주제가 또 있을까요? 연애 이야기를 인터뷰하듯 들어 보았더니, 사람을 대하는 서로 다른 태도가 또렷이 드러났습니다.

준서는 A반 학생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공부해야 한다"며 헤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시 만났습니다. 여자친구가 그동안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지금 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다 포기했어요. 그냥 이해해요." 저는 이 말을 듣고 "너희는 오래갈 거야"라고 했습니다. 포기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고집을 내려놓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기범은 B반 학생인데, 반년쯤 사귀다 "성격이 안 맞아서" 헤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했습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물건이 아니잖아요." 이 말은 야구부 홍민이 후배를 대하는 태도와 똑같습니다. 홍민은 선을 넘는 후배에게 딱히 따지지 않고 조용히 관계를 끊는 식이었습니다. 둘 다 같은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안 맞으면 끊는다.

경태는 C반 학생으로, 지금 만나는 사람과 1년째라고 합니다. 그전에는 2년을 사귀었는데 너무 많이 싸워서 헤어졌다고 합니다.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으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 주장만 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웠어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려고요." 실제로 지금 여자친구가 지적하는 점을 고쳤다고 합니다. 제가 농담으로 "아니,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했더니 교실이 또 웃었습니다.

이 네 사람의 이야기는 사람을 대하는 두 갈래 태도를 보여 줍니다. 한쪽은 '사람은 고쳐 쓰는 물건이 아니다'라며 안 맞으면 끊는 길입니다. 다른 한쪽은 준서와 경태처럼 상대를 받아들이고, 입장을 바꿔 보고, 자기를 고치는 길입니다.

두 태도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미묘한 점이 있습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물건이 아니다"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상대를 존중하는 말입니다. 상대를 내 입맛대로 바꾸려 들지 않겠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관계가 어려워질 때 쉽게 등을 돌리는 핑계가 되기도 합니다. '쟤는 원래 저런 애니까'라며 더 알아보려는 노력을 멈추는 것입니다.

같은 말이 존중이 될 수도, 회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갈림길은 '상대를 더 알아보려 했는가'에 있습니다. 경태는 상대를 더 알아보려 입장을 바꿔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자기를 고쳤습니다. 둘 중 무엇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두 태도가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뒤에서 만날 철학자 레비나스에게서 본격적으로 풀어 보겠습니다.

💡 한 줄 정리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두 태도는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생각하기 1. "사람은 고쳐 쓰는 물건이 아니다"라는 말에 동의합니까? 동의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일까요, 아니면 관계를 쉽게 포기하는 태도일까요?

생각하기 2. 경태는 상대의 지적을 받아들여 자기를 고쳤다고 합니다. 사람이 변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과 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은, 사람을 어떻게 다르게 대하게 만들까요?

 
05

CHAPTER 05

📌 이야기 다섯 — 중2병과 전체주의

📌 이 장의 핵심

▸ '중2병'은 자기만의 세계관을 처음 세워 보려는 격렬한 시도이며, 자라는 과정입니다.

▸ 힘으로 누르면 신념은 꺾여도 마음은 닫히고, 물어 주면 아이는 스스로 빈틈을 봅니다.

A반의 한 학생이 자기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한때 어떤 사상에 깊이 빠져 그것을 맹신했다고 합니다. 본인 표현으로는 "전체주의에 빠졌었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이 옆에서 "맞아요, 저희가 당했어요" 하고 거들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 장면입니다. 어머니가 말리자 이 학생이 이렇게 받아쳤다고 합니다. "엄마가 전체주의에 대해 뭘 알아요." 아버지가 "그러면 밥 안 준다"고 하자, 이틀을 굶다가 "죄송합니다" 하고 끝났다고 합니다.

웃으며 듣는 이야기지만 그 안에 두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청소년기에 누구나 한 번쯤 어떤 생각을 절대 진리처럼 끌어안는 시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중2병'이라 부르는 이 시기는 사실 자기만의 세계관을 처음으로 세워 보려는 격렬한 시도입니다.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자라는 과정입니다.

아이는 부모가 준 세계관을 입고 자라다가, 어느 날 그 옷이 답답해지면 자기 옷을 직접 지어 입으려 합니다. 그 첫 시도가 서툴러서 때로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뿐입니다. 한 가지 생각을 절대 진리처럼 끌어안아 보는 것은, 자기 세계관의 첫 단추를 끼우는 연습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강한 신념이 부모와의 충돌에서 어떻게 꺾이는가 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뭘 알아요"라는 말 속에는 '부모는 나를 다 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모른다'는 항변이 들어 있습니다. 동시에 그 말에는 '내 세계를 인정받고 싶다'는 외침도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충돌에서 "밥 안 준다"는 힘으로 누르면 신념은 잠깐 꺾이지만 마음은 닫힙니다. 반대로 "네가 그 생각에 빠진 이유를 한번 말해 줄래?"라고 물으면, 아이는 자기 세계를 말로 펼치면서 스스로 그 빈틈을 보게 됩니다. 어느 쪽이 아이를 더 자라게 할까요? 이 장면은 뒤에서 다룰 '부모-자녀 사이의 90퍼센트 착각'과 정확히 맞닿습니다.

생각하기 1. 내가 한때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었다가 지금은 다르게 보는 생각이 있습니까? 무엇이 그 생각을 바꾸게 했습니까?

생각하기 2. "엄마가 뭘 알아요"라는 말은 무례한 반항일 뿐일까요, 아니면 자기 세계를 인정받고 싶은 외침이기도 할까요?

 
06

CHAPTER 06

❓ 이야기 여섯 — 질문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 이 장의 핵심

▸ 좋은 질문 하나는 던진 사람만이 아니라 그 자리의 모두를 자라게 합니다.

▸ 질문의 가치를 아는 것과 실제로 묻는 것은 다르며, 묻는 데에는 용기가 듭니다.

질문에 관한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경준이 먼저 말했습니다. "저는 모르는 걸 확실히 알려고 질문해요." 좋은 출발입니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이어받았습니다. "질문을 하는 사람은 질문을 만드는 사고가 자라고요, 듣는 사람도 머릿속에서 이론이 정리되면서 같이 발전하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이 던진 물음이 교실 전체의 사고를 깨운다는 통찰입니다. 좋은 질문 하나는 던진 사람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두를 자라게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멋진 설명을 한 학생이 평소에는 질문을 잘 하지 않던 학생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본인은 정작 질문을 잘 안 하면서, 질문이 좋다는 건 아주 잘 아는구나." 교실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그 학생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운동이 몸에 좋다는 걸 알면서도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일찍 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휴대전화를 놓지 못합니다.

안다고 곧 행동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 인문학의 어려운 진실 하나가 들어 있습니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다릅니다. 질문의 가치를 머리로 아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손을 들고 묻는 것은 용기가 듭니다. 틀릴까 봐, 우스워 보일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문학은 머리로만 아는 학문이 아니라 직접 물어 가며 몸에 새기는 학문입니다. 이 진실은 뒤에서 소크라테스의 '지행합일'을 만날 때 다시 떠오를 것입니다.

💡 한 줄 정리인문학은 머리로만 아는 학문이 아니라 직접 물어 가며 몸에 새기는 학문입니다.

생각하기 1. 나는 질문의 가치를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제로는 잘 묻지 못하는 편입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망설이게 합니까?

생각하기 2. 한 사람의 질문이 모두를 자라게 한다면, 질문하지 않는 교실은 무엇을 잃고 있는 걸까요?

 
07

CHAPTER 07

📌 이야기 일곱 — 빅뱅은 본 적 없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 이 장의 핵심

▸ 과학자들은 관찰된 팽창을 거꾸로 되감는 추론으로 보지 못한 빅뱅에 도달했습니다.

▸ 보이지 않는 것도 작은 단서와 논리로 끝까지 밀고 가면 다가갈 수 있습니다.

03차시 무렵 우진이 던진 물음이 유난히 깊었습니다. "빅뱅은 아무도 관찰한 적이 없는데, 과학자들은 그게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아냈어요?" 좋은 질문입니다. 누구도 138억 년 전으로 돌아가 우주의 시작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우주의 나이는 오랫동안 137억 년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플랑크 위성이 우주 배경 복사를 정밀하게 측정한 뒤로는 약 138억 년이 표준값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과학자들은 빅뱅을 거의 확신합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답의 실마리는 우진 자신이 찾았습니다. "우주가 지금도 팽창하고 있어서요." 그렇습니다. 우주가 지금 사방으로 부풀고 있다면, 그 팽창 속도를 거꾸로 되감아 보면 어떻게 될까요? 시간을 거슬러 올릴수록 우주는 점점 작아지고, 끝까지 되감으면 한 점으로 수렴합니다. 그 한 점이 폭발한 사건 — 그것이 빅뱅입니다. 직접 보지 않고도, 관찰된 사실(팽창)에 논리적 추론(역산)을 더해 보이지 않는 과거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왜 인문학 단원에 넣었을까요? 인문학이 다루는 물음 — "왜 사는가", "악은 왜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 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알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관찰할 수 있는 작은 단서들에서 출발해 논리로 끝까지 밀고 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큰 진실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빅뱅을 알아낸 사고법과 사람 마음의 깊이를 헤아리는 사고법은, 도구만 다를 뿐 같은 종류의 추론입니다.

💡 한 줄 정리빅뱅을 알아낸 사고법과 사람 마음을 헤아리는 사고법은 같은 종류의 추론입니다.

생각하기 1. 직접 보지 못한 것을 '단서 + 논리'로 알아낸 경험이 내게도 있습니까?(예: 친구의 표정만 보고 마음을 짐작한 일)

생각하기 2. 과학이 다루는 '보이지 않는 것'(빅뱅)과 인문학이 다루는 '보이지 않는 것'(사랑·정의)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를까요?

 
08

CHAPTER 08

📌 이야기 여덟 — 동물농장과 권력의 무한 루프

📌 이 장의 핵심

▸ 『동물농장』의 돼지들처럼 권력을 잡은 자가 타락하고 다시 엎어지는 '무한 루프'가 반복됩니다.

▸ 루프를 늦추려면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물음을 멈추지 않는 시민이 있어야 합니다.

2025년 G반의 한 학생이 조지 오웰이 1945년에 낸 『동물농장』을 읽고 와서 물었습니다. "혁명을 이끈 돼지들이 나중엔 사람과 카드 게임을 하면서 똑같이 타락하잖아요. 사람의 욕심은 도대체 어디까지인 거예요?" 『동물농장』은 동물들이 인간 농장주를 몰아내고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계명을 내걸지만, 혁명을 이끈 돼지들이 점점 인간 지배자를 닮아 가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돼지들은 이웃 농장주들과 술을 마시며 카드놀이를 하다 속임수를 두고 다투고, 창밖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동물들은 어느 쪽이 돼지이고 어느 쪽이 사람인지 끝내 분간하지 못합니다. 벽에 적힌 계명도 어느새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는 한 줄로 바뀌어 있습니다.

제가 되물었습니다. "그렇다면 권력을 잡았을 때 더 도덕적이고 선한 권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학생이 날카롭게 답했습니다. "애초에 권력을 잡고 싶다는 발상 자체가 욕구가 심한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권력을 잡으면 또 타락하고, 그걸 보고 다른 누가 엎고, 또 타락하고… 무한 루프예요." 깊은 통찰입니다. 권력을 가장 원하는 사람이 권력을 잡고, 그 사람이 타락하는 구조가 끝없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통찰을 두 가지 사상과 이어 줍니다. 하나는 역사가 같은 흥망을 되풀이한다는 역사 순환론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돌고 돈다는 불교의 윤회 사상입니다. 새 왕조가 부패한 옛 왕조를 무너뜨리고 들어서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 새 왕조도 부패해 또 다른 세력에게 무너집니다. 동물농장의 돼지들이 인간 주인을 닮아 간 것은, 한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 역사가 수없이 반복해 온 장면입니다.

권력의 무한 루프를 끊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답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 루프를 멈추려면, '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권력자를 어떻게 감시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시민이 있어야 합니다. 권력자가 스스로 깨끗해지길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권력을 나누고, 임기를 정하고,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게 하는 장치들 — 이 모두가 무한 루프를 늦추려는 인류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그 장치들은 모두 "권력은 타락하기 쉽다"는 인문학적 통찰에서 나왔습니다. 그 물음을 던지는 힘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묻기를 멈추는 순간, 루프는 다시 돌기 시작합니다.

💡 한 줄 정리권력 분립·임기·비판의 자유는 모두 '권력은 타락하기 쉽다'는 통찰에서 나왔습니다.

생각하기 1. "권력을 잡고 싶다는 발상 자체가 욕심"이라는 말에 동의합니까? 그렇다면 좋은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생각하기 2. 권력이 타락하는 '무한 루프'를 끊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장치를 마련해 두었을까요?(예: 선거·삼권 분립·언론)

🤔 핵심 질문

권력이 타락하는 무한 루프를 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09

CHAPTER 09

❓ 이야기 아홉 — 잠들기 전의 물음들

📌 이 장의 핵심

▸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물음이 인문학의 출발점입니다.

▸ 잠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는 자기 물음은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문학적 훈련입니다.

2025년에 학생들이 던진 물음 몇 가지를 더 모아 보았습니다. 태정은 "사람들은 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배타적으로 대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주원은 잠들기 전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떠올리며 하루를 돌아본다고 했습니다. 호준은 "왜 사느냐"는 물음에 "태어났으니까요"라고 답했습니다.

이 물음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살다가 마음 깊은 곳에서 저절로 솟아오른 물음이라는 점입니다. 태정의 물음은 뒤에서 만날 '타자와 환대'로, 호준의 물음은 '삶의 의미'로 이어집니다. 주원처럼 잠들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묻는 습관은, 사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인문학적 훈련입니다. 고대 철학자들도 매일 밤 그날의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 점검'을 수련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거창한 책을 펴지 않아도, 잠들기 전 단 5분의 자기 물음이 사람을 천천히 바꿔 놓습니다.

생각하기 1. 나에게도 '저절로 솟아오른 물음'이 있었습니까? 그 물음은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생각하기 2. 잠들기 전 "오늘 나는 어떻게 살았나"를 한 번 물어본다면,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10

CHAPTER 10

📌 이야기 열 — 어느 아버지의 8년

📌 이 장의 핵심

▸ 아이를 고치려 할수록 아이도 부모도 더 힘들어졌다는 한 아버지의 고백입니다.

▸ 자녀도 끝내 타인이며, 그 타인을 대하는 방법으로 '전면적인 수용'에 이르렀습니다.

🔑 전면적인 수용

고치려 들지 않고 다 안다고 착각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방치와 다름)

이번에는 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저는 늦게 아이를 낳았고, 지금 중학교 2학년인 여자 쌍둥이가 있습니다. 둘째 아이가 네 살 무렵, 시간에 대한 강박과 분노를 다스리기 어려운 상태를 보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약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약 없이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길을 택했습니다.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육아 전문가가 아이를 진정시키는 데 보통 3분에서 5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 아이는 25분이 걸렸습니다. 한번은 아이가 크게 울고 소리치는 소리를 듣고 누군가 아동학대로 신고를 해서, 경찰 다섯 명이 집으로 출동한 일도 있었습니다. 오해는 풀렸지만, 그날의 막막함은 지금도 또렷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지금까지 그 아이를 받아들이며 살아왔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제 흰머리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이 흰머리, 이게 지난 8년 동안 만들어진 흰머리예요."

솔직히 고백하면, 처음 몇 해는 아이를 '고치려'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분노를 줄일까, 어떻게 하면 시간 강박을 없앨까. 그러나 고치려 들수록 아이도 저도 더 힘들어졌습니다.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내가 고치려 한 것은 사실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아이'였지, 아이 자신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깨달음 뒤에야 저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 한 줄 정리고치려 한 것은 아이 자신이 아니라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아이'였습니다.

이 8년이 제게 가르쳐 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자녀도 끝내 타인이라는 것입니다. 내 몸에서 나왔고 내가 키웠지만, 그 아이의 마음은 끝내 내가 다 알 수 없는 하나의 세계입니다. 그렇다면 그 타인을 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8년 끝에 한 가지 답에 이르렀습니다. 전면적인 수용입니다.

고치려 들지 않고, 다 안다고 착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오해하지 마세요. 수용은 방치가 아닙니다. 잘못된 행동을 그냥 두라는 게 아니라, 그 아이의 존재 자체를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행동은 함께 고쳐 갈 수 있지만, 그 사람 자체는 고칠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일 대상입니다. 이 답이 옳은지는 여러분이 단원 끝에서 스스로 판단해 주기 바랍니다.

💡 한 줄 정리행동은 함께 고쳐 갈 수 있지만, 사람 자체는 받아들일 대상입니다.

생각하기 1. "자녀도 타인"이라는 말이 차갑게 들립니까, 따뜻하게 들립니까?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생각하기 2. 누군가를 '고치려는' 사랑과 '받아들이는' 사랑은 어떻게 다를까요? 둘 중 더 어려운 쪽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핵심 질문

누군가를 고치려는 사랑과 받아들이는 사랑은 어떻게 다른가?

 
11

CHAPTER 11

📌 이야기 열하나 — 여섯 살의 독일, 어른의 독일

📌 이 장의 핵심

▸ 여섯 살에는 없던 '외국인'이라는 범주가 어른이 되자 벽이 되었습니다.

▸ 편견은 사물에 박혀 있는 게 아니라 자라면서 마음에 새겨진 범주에서 자라납니다.

▸ 새겨진 것이라면 다시 들여다보고 고칠 수 있으며, 그 들여다봄이 인문학입니다.

🔑 범주

사람을 인종·국적·주류와 비주류 등으로 나누는 머릿속 분류 틀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제 아버지는 독일에서 거의 40년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섯 살 무렵 독일에서 1년을 살았습니다. 그때 저는 동양인 남자아이였지만, 동네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뛰놀며 골목대장 노릇까지 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여섯 살의 눈에는 머리 색깔이 다르고 눈동자 색이 다른 것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는 같이 뛰어노는 친구가 있을 뿐, '외국인'이라는 범주가 아예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독일에 갔을 때는 전혀 달랐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이 사회의 주류에는 영원히 끼지 못하겠구나" 하고 느끼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나라에 갔는데, 여섯 살 때와 스물 몇 살 때의 경험이 이렇게 달랐습니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요? 거리가 달라진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범주'가 달라진 것입니다.

이 변화가 어디서 왔는지 한번 따져 보겠습니다. 여섯 살의 저와 어른의 저는 같은 사람입니다. 독일이라는 나라도 그대로입니다. 달라진 것은 단 하나, 제 머릿속에 '인종'과 '국적'과 '주류·비주류'라는 범주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자라면서 우리는 세상을 더 잘게 분류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 분류가 편리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분류가 사람을 나누고 벽을 세우기 시작하면, 여섯 살 때는 없던 차별이 자라납니다. 아이가 어른보다 편견이 적은 것은 마음이 더 착해서가 아니라, 아직 그 분류를 덜 배웠기 때문입니다.

💡 한 줄 정리아이가 편견이 적은 것은 더 착해서가 아니라 분류를 덜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방송에서 여러 차례 다뤄진 거리 실험 이야기를 덧붙이겠습니다. 서울 도심에서 똑같은 말로 똑같이 길을 묻되, 묻는 사람의 겉모습만 바꾸어 보는 실험입니다. 서구권 사람으로 보이는 이가 물을 때와 동남아시아 출신으로 보이는 이가 물을 때, 행인이 걸음을 멈추고 답해 주는 비율이 눈에 띄게 갈렸습니다. 여기서 저는 구체적인 숫자를 대지 않으려 합니다. 방송 실험은 표본이 작고 조건 통제가 느슨해, 몇 퍼센트라고 못 박는 순간 없는 정밀함을 지어내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방향만은 정식 연구에서도 되풀이 확인됐습니다. 미국의 두 경제학자가 내용이 똑같은 이력서에 이름만 백인에게 흔한 것과 흑인에게 흔한 것으로 바꿔 5,000통 가까이 뿌린 실험이 대표적입니다.

백인 이름 쪽이 면접 연락을 50퍼센트가량 더 받았습니다. 같은 질문, 같은 거리, 같은 도시인데 사람들의 반응이 갈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응답을 거른 사람들이 특별히 악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평범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무의식에 새겨진 범주가 손과 발을 다르게 움직이게 했습니다.

여섯 살의 독일 골목과 어른의 명동 거리 사이에 놓인 것 — 그것이 바로 편견과 차별의 정체입니다. 편견은 사물에 원래 박혀 있는 게 아니라, 자라면서 우리 마음에 새겨진 범주에서 자라납니다. 그리고 새겨진 것이라면, 다시 들여다보고 고칠 수도 있습니다. 그 들여다봄이 인문학입니다.

💡 한 줄 정리평범하고 친절한 사람도 무의식에 새겨진 범주 때문에 다르게 반응합니다.

생각하기 1. 여섯 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사람을 대할 때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그 변화에서 잃은 것과 얻은 것은 각각 무엇일까요?

생각하기 2. 거리 실험에서 나타난 응답률 차이를 사람들의 '악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 핵심 질문

여섯 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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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

📌 마무리 이야기 — 열한 개의 실이 모이는 곳

📌 이 장의 핵심

▸ 열한 개의 이야기는 모두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돕니다.

▸ 인문학의 재료는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 평범한 교실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열한 개의 이야기를 펼쳐 보았습니다. 준우와 대현과 소리의 세 물음, 공부의 이유, 성희의 효도, 네 사람의 연애, 중2병, 질문하는 사람, 빅뱅의 역산, 동물농장의 권력, 잠들기 전의 물음, 아버지의 8년, 여섯 살의 독일. 얼핏 제각각인 이야기들 같지만, 한 발 떨어져서 보면 모두 같은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전부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하나의 물음을 빙빙 돌고 있습니다. 고통받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헤어진 사람, 다른 사람, 그리고 끝내 다 알 수 없는 사람. 인문학은 바로 이 '사람'이라는 우주를 들여다보는 망원경이자 현미경입니다.

멀리 있는 별을 당겨 보는 망원경처럼 한 사람의 깊은 속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미세한 것을 키워 보는 현미경처럼 일상의 작은 말 한마디에 담긴 마음을 확대해 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교실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이기에 더 소중합니다. 인문학의 재료는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일상의 이야기들을 한 단계 끌어올려, 예술과 철학이라는 더 큰 렌즈로 같은 물음을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다음 섹션에서는 화가 피카소를 철학자처럼 읽어 보겠습니다. 한 사람을 제대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피카소가 평생을 들여 그림으로 답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 오늘의 정리

1

스스로 솟아오른 물음은 그 자체로 이미 인문학의 출발이다.

2

안다고 믿는 것을 캐물을 때 비로소 자기 생각의 빈틈이 보인다.

3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르다 — 인문학은 물어 가며 몸에 새기는 학문이다.

4

타인은 끝내 다 알 수 없는 세계이며, 고칠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일 대상이다.

5

편견은 자라며 새겨진 범주에서 오기에, 다시 들여다보고 고칠 수 있다.

📌·🔑·💡·🤔·✅ 표시 상자는 이해를 돕기 위한 편집 요약입니다. 본문은 원문 전문 그대로입니다.

마지막 수정됨: 수요일, 19 8월 2026, 2:22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