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토아주의자로 일주일 살아보기 · 4일 차

좋은 사람, 덕, 친구에 대해 생각하기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 11개 절📊 표 2🎬 영상·오디오 2
① 이론
② 미디어
③ 실천·필사
④ 과제
⑤ 느낌점

🤔 오늘의 핵심 질문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그리고 그것은 오늘 무엇을 하는 것으로 드러납니까.

 

1

사흘 동안 안쪽을 봤습니다

 

📌 이 절의 핵심

· 마음을 다스리는 이유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첫날은 내 손에 있는 것을 나눴고, 둘째 날은 감정을 나눴고, 셋째 날은 무너진 다음을 다뤘습니다. 사흘 내내 안쪽을 봤습니다.

오늘부터 밖으로 나갑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스토아는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기술로만 남는 철학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이유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순서를 뒤집으면 이 철학은 자기 관리 기법이 됩니다.

오늘 물음은 단순합니다.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2

좋은 사람을 재는 두 가지 자

 

📌 이 절의 핵심

· 둘째, 사람 자체로 잽니다.

· 좋은 사람은 좋은 결과를 낸 사람이 아니라 좋게 하려고 한 사람

· 해 본 뒤의 결과까지 내 책임으로 삼지는 않는다

이 물음에 답하는 방식은 크게 둘입니다.

첫째, 결과로 잽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기부를 많이 했다, 사람을 여럿 도왔다, 세상을 바꿨다.

둘째, 사람 자체로 잽니다.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로 봅니다.

스토아는 두 번째 쪽입니다. 이유가 첫날의 통제의 이분법에 있습니다. 결과는 내 손에 없습니다. 남을 도우려 했는데 도움이 안 될 수 있고, 좋은 뜻으로 한 일이 나쁘게 끝날 수 있습니다. 결과로만 재면 좋은 사람이 되는 일도 운에 맡겨집니다.

그래서 스토아는 자를 안쪽으로 옮깁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결과를 낸 사람이 아니라 좋게 하려고 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오해가 하나 생기기 쉽습니다. 「마음만 좋으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좋게 하려면 실제로 해야 합니다. 다만 해 본 뒤의 결과까지 내 책임으로 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구분이 오늘의 첫 번째 도구입니다.

3

네 개의 덕

 

📌 이 절의 핵심

· 지혜는 판단의 덕이고, 정의는 관계의 덕이고, 용기와 절제는 자기를 다루는 덕입니다.

· 네 개가 따로 있지 않다

스토아는 좋은 사람의 조건을 네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그리스 철학에서 오래 쓰이던 목록인데, 스토아가 이것을 가장 단단하게 붙잡았습니다.

덕 무엇인가 오늘 하루에 대면
지혜 무엇이 진짜 좋은 것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아는 것 오늘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흘려보냈는가
정의 남에게 마땅한 것을 주는 것 오늘 누구를 공정하게 대했는가. 누구에게 그러지 못했는가
용기 두려운데도 해야 할 것을 하는 것 오늘 피하고 싶었는데 한 일이 있는가
절제 하고 싶은 것 앞에서 자기를 잡는 것 오늘 하고 싶었는데 안 한 것이 있는가

네 개를 나란히 놓고 보면 성격이 다릅니다.

지혜는 판단의 덕이고, 정의는 관계의 덕이고, 용기와 절제는 자기를 다루는 덕입니다. 용기는 물러서고 싶을 때 나아가는 것이고, 절제는 나아가고 싶을 때 멈추는 것입니다. 방향이 반대인 두 힘입니다.

스토아가 특히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네 개가 따로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용기만 있고 지혜가 없으면 무모함이 되고, 절제만 있고 정의가 없으면 자기만 챙기는 것이 됩니다. 하나가 나머지 셋 없이 서면 덕이 아니라 다른 것이 됩니다.

4

덕이 왜 「나에게」 좋은가

 

📌 이 절의 핵심

· 진짜 좋은 것은 나쁘게 쓰일 수 없어야 합니다.

· 여기까지는 논리이고, 실감은 다릅니다.

· 선호되는 것을 얻으려고 덕을 버리면 안 된다

여기서 스토아의 가장 강한 주장이 나옵니다. 그리고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기도 합니다.

스토아는 덕만이 진짜 좋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건강, 돈, 명예, 사람들의 인정. 이런 것들은 좋은 것이 아니라 있으면 편한 것이라고 봤습니다.

이상하게 들립니다. 건강이 좋은 것이 아니라니.

그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진짜 좋은 것은 나쁘게 쓰일 수 없어야 합니다. 돈은 나쁘게 쓰일 수 있습니다. 힘도, 재능도, 심지어 건강도 나쁜 일에 쓰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은 나쁘게 쓰일 수 없습니다. 그 자체가 이미 좋은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논리이고, 실감은 다릅니다. 실감으로는 성적이 좋은 것이고 인정받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하면 이 철학은 실생활과 멀어집니다.

그래서 스토아도 선을 그었습니다. 건강과 돈과 좋은 관계를 「선호되는 것」이라고 불렀습니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있는 편이 나은 것입니다. 그것을 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순서가 있습니다. 선호되는 것을 얻으려고 덕을 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적을 위해 남을 밀어내거나, 인정받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그때 잃는 것이 더 크다고 그들은 봤습니다.

5

좋은 사람과 좋은 공동체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스토아는 사람을 혼자 있는 존재로 보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적 동물에게 정의는 자기 본성에 맞는 일이라고 봤습니다.

아우렐리우스가 이것을 짧게 적었습니다.

“

"벌 떼에 이롭지 않은 것은 벌에게도 이롭지 않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VI.54

강한 문장입니다. 나에게 좋은 것과 우리에게 좋은 것이 갈릴 때, 갈리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도 조심할 자리가 있습니다. 이 말이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라」로 읽히면 안 됩니다. 스토아는 개인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말한 것은 반대 방향입니다. 사람은 이어져 있으므로, 남을 해치면서 내가 잘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6일 차에 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룹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놓아 둡니다.

잠깐, 생각 실험 하나 — 아무도 모를 때

한 가지 상황을 놓아 보겠습니다.

시험 중에 답이 보였습니다. 앞자리 학생의 답안지가 그냥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부러 본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감독 선생님도 못 봤고, 앞자리 학생도 모르고, CCTV도 없습니다. 그 답을 쓰면 한 문제를 더 맞습니다.

여기서 쓰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몇 가지 답이 가능합니다.

  1. 걸릴까 봐 — 그런데 안 걸린다고 가정했습니다.
  2. 다른 애들에게 미안해서 — 그럴듯합니다. 정의의 덕입니다.
  3. 내 실력이 아니니까 — 이것도 그럴듯합니다.
  4. 그냥 하기 싫어서 — 이것이 가장 흥미로운 답입니다.

4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유를 대라고 하면 잘 안 나오는데, 그냥 안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스토아가 말한 「좋은 사람」에 가장 가깝습니다.

덕은 규칙을 지키는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 있어서 그 행동이 잘 안 나오는 상태입니다. 규칙으로 막는 사람은 규칙이 없으면 합니다. 사람이 되어 있는 쪽은 규칙이 없어도 안 합니다.

오늘 실천에서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서 한 일」을 묻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6

키케로 — 스토아가 아닌 사람에게 배우기

 

📌 이 절의 핵심

· 둘째, 그의 『의무론』이 스토아 윤리를 바탕으로 합니다.

· 반대편 학파 사람이 남긴 기록으로 그 학파를 배우는 셈입니다.

· 자기가 속하지 않은 쪽에서 배우는 것이 가능합니까.

오늘 만나는 사람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입니다. 그런데 먼저 바로잡을 것이 있습니다.

키케로는 스토아 철학자가 아닙니다.

이 프로젝트의 기존 자료는 그를 「스토아주의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카데미아 회의주의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메이아가 후대에 「확실한 앎에 도달할 수 없다」는 쪽으로 기울었고, 키케로가 그 계열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왜 스토아 과정에 그가 나옵니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그가 스토아를 로마에 옮긴 사람입니다. 그리스어로 되어 있던 스토아 사상을 라틴어로 옮기고 로마인의 언어로 다시 쓴 것이 그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덕(virtus)」, 「의무(officium)」, 「인간성(humanitas)」 같은 말이 그의 번역어에서 왔습니다.

둘째, 그의 『의무론』이 스토아 윤리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는 이 책에서 스토아 철학자 파나이티오스의 저작을 뼈대로 삼았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자기 학파가 아닌 사상을 가져다 정리한 것입니다.

셋째, 초기 스토아의 원전이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제논과 크리시포스의 책은 지금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초기 스토아를 아는 통로 중 하나가 키케로의 요약입니다. 반대편 학파 사람이 남긴 기록으로 그 학파를 배우는 셈입니다.

여기에 오늘의 물음이 하나 더 붙습니다. 자기가 속하지 않은 쪽에서 배우는 것이 가능합니까. 키케로는 스토아의 결론을 다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정확히 옮기려 했습니다. 5일 차에 이 물음을 다시 만납니다.

7

우정 — 덕이 밖으로 나가는 자리

 

키케로가 남긴 것 가운데 오늘 우리가 쓸 것은 『우정에 관하여』입니다. 친구 라일리우스가 죽은 친구 스키피오를 회상하며 우정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는 우정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

"우정이란 신적인 일과 인간적인 일 모두에 대해
선의와 애정을 지니고 뜻을 같이하는 것이다."

— 키케로, 『우정에 관하여』 20

풀어 보겠습니다. 뜻을 같이한다는 것이 중심입니다.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좋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선의와 애정이 붙습니다.

이 정의가 왜 오늘 주제와 붙습니까. 좋은 것에 대한 판단이 같아야 친구가 된다면, 우정은 덕과 떼어질 수 없습니다. 키케로가 「우정은 덕에서만 나온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그는 강한 문장도 하나 남겼습니다.

“

"삶에서 우정을 없애는 사람은
세상에서 태양을 없애는 것과 같다."

— 키케로, 『우정에 관하여』 47

그리고 가장 널리 인용되는 대목이 이것입니다.

“

"참된 친구는 말하자면 또 하나의 자기다."

— 키케로, 『우정에 관하여』 80

「또 하나의 나」라는 말이 무섭기도 합니다. 그만큼 친구가 나를 만든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8

지음 —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

 

📌 이 절의 핵심

· 들어 줄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

· 키케로의 「또 하나의 자기」와 지음이 같은 것을 말합니까.

· 내가 하는 것을 알아듣는 사이

같은 이야기를 동아시아에서는 다르게 했습니다.

춘추 시대에 백아라는 사람이 거문고를 탔습니다. 그의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종자기 하나였습니다. 백아가 높은 산을 생각하며 타면 종자기가 "태산 같구나" 했고, 흐르는 물을 생각하며 타면 "강물 같구나" 했습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타지 않았습니다. 들어 줄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소리를 안다」는 뜻이고,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키케로의 「또 하나의 자기」와 지음이 같은 것을 말합니까. 조금 다릅니다.

키케로 쪽은 같은 것을 좋게 여기는 사이입니다. 가치의 일치가 먼저입니다. 지음 쪽은 내가 하는 것을 알아듣는 사이입니다. 이해가 먼저입니다.

둘 중 어느 쪽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우정에 가깝습니까. 오늘 실천에서 물어볼 것입니다.

9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면 되는가

 

📌 이 절의 핵심

· 네 덕으로 하루를 채점하는 것

· 친구에게 한 가지를 실제로 하는 것

· 오늘 하루에서 각 칸에 해당하는 장면을 하나씩 찾는 것

오늘 할 일은 삼박자 그대로입니다. 오늘의 도구는 네 덕으로 하루를 채점하는 것과 친구에게 한 가지를 실제로 하는 것입니다.

「채점」이라는 말을 쓰지만 점수를 매기는 것이 아닙니다. 네 칸을 놓고 오늘 하루에서 각 칸에 해당하는 장면을 하나씩 찾는 것입니다. 찾지 못한 칸이 있어도 됩니다. 오히려 그 빈칸이 정보입니다.

10

오늘의 영상 (2편)

 

이 페이지에는 오늘 이론과 곧바로 맞물리는 두 편만 둡니다. 나머지 미디어는 섹션 2 「4일차 미디어 모음」에 모아 두었습니다.

영상 보는 이유
지식채널 「우정이 있었다」 우정 한 편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오늘 7·8절의 두 정의 중 어느 쪽에 가까운지 보시기 바랍니다
지식채널 「좌절의 정석 1부」(스토아주의) 덕이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시험받는지를 다룹니다

보는 방법. 한 가지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좋은 사람은 결과로 판정됩니까, 사람 자체로 판정됩니까.

 
🎬

🎬 영상

지식채널 「우정이 있었다」

우정 한 편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오늘 7·8절의 두 정의 중 어느 쪽에 가까운지 보시기 바랍니다.

지식채널 「좌절의 정석 1부」(스토아주의)

덕이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시험받는지를 다룹니다.

 

다 읽고 나면

두 번째 페이지 「4일차 미디어 모음」으로 넘어갑니다.

✅ 오늘의 정리

1

사흘 동안 안쪽을 봤습니다 — 마음을 다스리는 이유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2

좋은 사람을 재는 두 가지 자 — 좋은 사람은 좋은 결과를 낸 사람이 아니라 좋게 하려고 한 사람

3

네 개의 덕 — 지혜는 판단의 덕이고, 정의는 관계의 덕이고, 용기와 절제는 자기를 다루는 덕입니다.

4

덕이 왜 「나에게」 좋은가 — 진짜 좋은 것은 나쁘게 쓰일 수 없어야 합니다.

5

좋은 사람과 좋은 공동체 — 정의는 자기 본성에 맞는 일

6

키케로 — 스토아가 아닌 사람에게 배우기 — 반대편 학파 사람이 남긴 기록으로 그 학파를 배우는 셈입니다.

7

지음 —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 — 키케로의 「또 하나의 자기」와 지음이 같은 것을 말합니까.

8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면 되는가 — 오늘 하루에서 각 칸에 해당하는 장면을 하나씩 찾는 것

마지막 수정됨: 금요일, 9 8월 2024, 10:57 AM